자동차 소비자 불만도 당국엔 '소귀에 경 읽기'
한국, 공인연비 검증결과 공표않아… 미국과 대조
현대·기아차 연비과장 파문은 자동차 관련 정부기관의 오랜 '업계 봐주기' 관행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두 회사의 해외시장 점유율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이 자동차 경제성과 성능표시 기준을 글로벌 기준에 못미치게 느슨하게 관리해와 이같은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판매한 차량은 모두 360만대에 가깝다. 이 가운데 내수 판매는 54만3063대로 전체의 15.1%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팔린 자동차가 304만7354대로 전체의 84.9%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비중이 높다.
기아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올들어 10월까지 총 판매량 224만1120대 가운데 내수가 39만1146대로 전체의 17.5%, 해외 수출은 224만1210대로 전체의 82.5%를 각각 점유하고 있다.
그만큼 해외수출 비중이 높다. 내로라는 외국산 자동차와 성능과 디자인을 겨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계당국은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자동차 업계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수출용 i20 차량을 선적하고 있다.
자동차 연비 검증의 경우도 그렇다. 국내에서 자동차 연비 검증 시 오차의 법적 한도는 5%로 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오차 한도가 3%로 한국보다 엄격하다. 한국의 기준을 적용했다면 이번에 문제된 13개 모델 가운데 적어도 8개는 혐의를 벗을수 있었다. 그만큼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느슨한 기준에 길들여질 수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수천억원 이상을 보상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국내 자동차 연비 검증기관이 오차 한도를 미국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높였다면 연비과장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나아가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절약형 차량개발에 더욱 매진해 국산차의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차의 공인연비를 둘러싸고 미국 환경보호청과 이견을 보인바 있다"면서 "미 환경보호청과 협의하에 저항계수를 수정했고 그 결과 평균적으로 약 3%의 정도의 공인연비 하향효과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 당국, 공인연비 검증결과 공표하지 않아… 스스로 화 키워
오차 허용 범위가 큰 것도 문제이지만 소비자들에게 공인연비 검증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차업계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도 일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공인연비 시험결과를 언론과 일반인에게 공개하며 홈페이지 등에도 올려 소비자들이 차량의 공인연비와 사후 시험결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자동차 업계가 고의 혹은 과실로 연비를 속였을 때는 집단소송 등을 통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연비를 사후 검증한 자료를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의 알권리는 무시하는 대신 자동차업체는 보호하는 정책인 셈이다.
◆…자동차 비교성능실험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이와 관련 지식경제부 송유종 에너지절약추진단장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 일반 국민들한테 공개한 적은 없다”라며 “앞으로 공신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면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공인연비 사후 검증을 체크해야 할 관계당국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이 현대·기아차의 공인연비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인연비를 시험하는 방법과 장소에 관한 제도도 보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연비는 자동차 회사가 제출한 연비와 공인시험기관에서 나온 연비를 비교해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최종 승인한다.
공인연비는 실내 연비측정기에서 나온 값에서 주행저항을 산출한 값을 빼 산출한다. 현대차는 자사의 주행저항 자료를 남양연구소에서 산출해 제공하고 있다.
공인연비 자료가 잘못되더라도 최대 과태료 500만원으로 처벌 수위가 낮은 것도 관련 규제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외에도 허점이 많다. 국내에선 자동차 제조업체가 직접 길들인 차량을 이용해 공인연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만큼 연비가 좋게 측정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에는 상당수 국가가 인증과정에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유럽과 중국에서도 정부가 처음부터 감시의 눈길을 보낸다.
공인 연비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지면서 이번 기회에 연비제도를 전면 손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연비 조사과정에 객관적인 제3자를 참여시키고, 연비과장에 대해서는 엄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