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의 근간이 되었던 보험설계사들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이와 함께 보험대리점의 영업기반도 무너지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부진으로 보험가입 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변액연금과 연금저축보험 등 저축성 보험의 수익률이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보험상품의 인기가 곤두박질치자 신규가입자가 급감하고 있다.
게다가 설계사를 거치지 않고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경로가 넓어져 설계사의 설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설계사 없이 직접 고객에게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다이렉트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다. 은행창구를 통해 보험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는 메가톤급 위협이다.
2012년말 현재 활동중인 보험설계사는 생명보험이 16만명, 손해보험 18만 명, 대리점 4만명 등 모두 38만명에 이른다. 이렇게 거대한 직군을 형성하는 보험설계사들이 판매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일선 영업담당자들은 “설계사들은 척박해져가는 영업환경 때문에 갈수록 계약체결비용은 늘어나는데 소득은 줄고 있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방카슈랑스 비중 72.5% 설계사 실적 잠식
설계사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방카슈랑스와 다이렉트 채널 등 설계사를 대체할 판매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8월 방카슈랑스가 도입되기 직전에는 설계사를 통한 보험가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2012년 3분기 방카슈랑스를 통한 판매실적이 전체의 72.5%(초회보험기준)나 차지했다. 반면 설계사를 통한 판매비중은 19.6%에 그쳤다. 이 기간중 은행을 통해 즉시연금이 대량 판매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설계사의 비중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중소보험사를 중심으로 다이렉트 등 대체채널을 늘리고 있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미 자동차보험은 설계사를 거치지 않고 본사 콜센터를 통한 가입이 일상화됐다. 보험료가 15%정도 싼 이점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시장도 온라인판매 자회사 설립을 서두르는 회사가 늘고 있다. KDB생명이 가장 적극적이다. 삼성생명과 같은 대형업체는 설계사 조직을 감안해 소극적이지만 중소규모 회사는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보험시장 포화상태에 수당낮은 저축성보험 의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놓인 것도 설계사들이 실적을 올리기 힘든 요인이 되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의 보험가입 비율은 79.3%에 이른다. 이는 보험가입여력이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사들은 ‘보험 리모델링’, ‘보험 진단 서비스’ 등 그럴싸한 이름으로 다른 보험사의 계약을 해약하고 자사 계약으로 갈아타토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계약자이익 침해문제로 고민을 하게 되고 부당하게 특별이익을 제공하는 위법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보장성보험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설계사들은 수당이 낮은 저축성보험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저축성보험은 사업비를 많이 부가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설계사 수당도 낮다. 통상 보장성보험의 모집수당은 월납보험료의 700% 수준인데 비해 저축성보험은 300% 내외이다. 종신보험의 경우에는 월납보험료의 1,450%를 수당으로 지급한다. 그런만큼 설계사의 수입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생명보험사의 초회보험료 1조 6096억원 중 보장성보험은 전체의 6.2%인 999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저축성보험은 1조 2588억원으로 78.2%를 차지했다.
작년 상반기에 초회보험료는 46조2천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 대비 11조5000억원(33.5%)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설계사의 월평균 소득은 287만원으로 전년 대비 13만원(4.3%) 줄었다.
소비자보호 활동 강화로 인한 판매저조도 한 몫
컨슈머리즘의 확대로 인한 정보공개 강화도 보험설계사들이 영업실적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4월 '변액보험 컨슈머리포트'가 발표된 후 변액보험 판매가 곤두박칠 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발표 후 판매율이 업계평균 30%나 감소했다.
지난 10월에는 금감원 소비자보호처가 연금저축 컨슈머리포트를 발표하여 연금저축보험 판매도 타격을 입었다. 연금저축보험의 지난 10년간 수익률이 은행의 정기적금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고객들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은 앞으로도 소비자보호와 관련된 제반조치와 함께 관련정보의 공개도 강화할 것으로 보여 판매과정이 더욱 길어지고 까다로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보험시장 성장 가능성 불구 설계사 실적 개선은 미지수
지난해 보험산업의 부정적인 측면이 유난히 많이 노출된 가운데서도 한국의 보험산업이 향후 1.5~2배 성장할 여력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김수봉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재정부담 등으로 국민연금 및 국민건강보험 등 공적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보험산업이 최적의 해결방안"이라며 이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공적인 사회보장 수준이 OECD국가의 평균에 못미치기 때문에 사적 안전망을 확대하고자 하는 수요로 발전여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보험전문가들도 현재의 우량피보험자 중심의 안일한 상품운영 시스템을 개선하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난 12월 5일 보험개발원이 개최한 기자단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고연령자, 병력보유자 등 표준미달체 및 장애인을 위한 신상품 개발 등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한다"며 새로운 보험시장을 개척해서 위기를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업계전문가들은 “보험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변액보험과 연금저축보험 수익률 논란으로 고객을 잃은 것은 보험사가 그러한 위험을 자초한 면이 크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험산업의 생태계가 건전하게 복원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