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인수위와 협의시사…과세결정권 넘겨
세법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종교인 과세' 문제가 화두로 급부상 한 가운데, 정부가 최종 과세결정권을 사실상 인수위원회 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종교인 과세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나섰지만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종교계 일각에선 여전히 반대 의견이 나오면서 팽팽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하경제 등 '숨은 세원' 양성화를 조세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박 당선인이 종교계의 반대여론을 무릎 쓰고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9일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오는 13일 예정된 재정부 업무보고에는 재정부가 이달 중순 이후 발표할 세법시행령 개정사안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보고 발표자가 세제실장이 아닌, 기획조정실장으로 개별 세목별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인수위원들에게 일일이 보고되지 않겠지만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선별적인 보고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중 최근 세법 개정논의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종교인 과세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논란이 됐던 종교인 근로소득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내부적으로 마련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시행 여부와 시행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현행 세법상 목사, 승려 등 종교인들에 대한 별도의 면세혜택이 규정돼 있지 않아 유권해석을 통해 과세가 가능하다는 의견과 세법 시행령(36조)에 과세대상으로 명확히 적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고심한 끝에,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종교인의 소득을 근로소득으로 일반 근로자들과 동일한 세율로 과세할지,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할지 여부나 과세 시행시기 등에 대해서는 전혀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운찬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 8일 기자브리핑에서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물린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달 발표될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될지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과세 추진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종교인 과세 문제를 재차 들고 나온 이유는 정책 추진력이 가장 최고조인 인수위 차원에서 논란을 해소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상의 'SOS'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박근혜 당선자의 조세정책 방향성이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와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비록 과세를 통한 세수확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종교인 과세에 대한 결단여부가 낳는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위 차원에서 이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할 경우, 향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원 양성화 프로젝트에 한층 가속을 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현재 인수위는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가짜석유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세정당국에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인수위 차원에서 종교인 과세여부가 결정될 경우, 정부는 언제든지 과세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세법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은 정부 고유권한으로 입법예고를 거쳐 1~2달 내로 곧바로 시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굳이 이달 시행령 발표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시행여부가 인수위 차원에서 결정되면 언제든지 종교계와 추가협의를 거쳐 과세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상황이다.
대체로 정부 조세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야권도 이 문제에 대해선 상당히 우호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이날 논평을 내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획재정부는 종교인 과세에 필요한 시행령 개정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사실상 세법 시행령 개정문제를 인수위 측과 협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오는 13일로 예정된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세법시행령 개정안도 보고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수위 측과 어느 정도 협의를 거친 뒤에 시행령 개정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