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침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던 2008년 말, 세계 주요국가들은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해외 조세피난처에 빼돌려진 대(大)재산가들의 '검은 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조세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 LGT은행과 스위스 UBS은행 등의 비밀계좌 탈세 사건이 터지면서 역외탈세를 잡기 위한 각국 과세당국의 레이스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위 LGT(Liechtenstein tax affair)사건은 독일 비밀정보국이 입수한 한 장의 CD에서 비롯됐다. 독일 비밀정보국은 익명의 제보자에게 500만 유로(한화 약 69억원)를 지불하고 이 CD를 획득했다. 역외탈세 차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정보'라는 것을 일깨운 사건이다.
입수경로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세청도 최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케이만제도 등 대표적 조세피난처 소재 페이퍼컴퍼니와 관련된 400GB 규모의 원시자료를 확보, 대대적인 세무조사 기초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시자료를 분석한 국세청은 405명의 한국인 추정명단을 추출했고 이 중 267명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이들 중 조세탈루혐의가 확인된 39명을 조사대상자로 선정, 11명은 조사를 완료(714억원 추징)하고 18명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10명은 3일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경유지'로 삼아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법으로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추가적인 검증을 통해 초강력 세무조사 및 세금추징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단 2개의 조세피난처에서 이처럼 많은 한국인 명단이 확인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십 수개 조세피난처에 한국인들이 상당한 액수의 검은 돈을 꽁꽁 숨겨두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보가 없어, 잡아내질 못하고 있을 뿐이다.
□ "폐기물 업체, 물로 보지마"…탈세 고수(高手) = 국세청 조사를 통해 수 백억원의 세금을 두들겨 맞은 코스닥 등록 업체 사주 A는 해외로 기업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두 개의 페이퍼컴퍼니(가, 나)를 조세피난처에 설립했다.
국내법인이 페이퍼컴퍼니(나)로부터 폐기물 등을 정상적인 원재료로 위장·수입하는 수법으로 기업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고 자금을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가)에 은닉해 세금을 탈루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사주 A는 정보이용자들에게 폐기물 등 가짜 원재료 매입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할 목적으로 국내·외 관계사를 동원해 사실과 다른 거래를 하면서 회사 부실을 은폐하기도 했던 것으로 국세청 조사결과 드러났다.
□ 부동산임대업자 B의 부업은 '탈세' = 부동산임대업자 B는 해외공장도 가지고 있으면서 해외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해외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외국법인을 통해 중계무역을 하면서 소득을 발생시켰고, 이 소득은 고스란히 사주가 설립하고 관리하는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에 배당하는 방법으로 각종 세금을 탈루했다. 국세청은 B의 탈루소득을 찾아내 수 백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 빼돌린 소득, 부동산·고급차 구입 '펑펑' = 개인사업을 영위하는 C는 벌어들인 소득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이후 국내거래처에 OFFER용역을 제공하고 자신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가 용역을 제공한 것처럼 허위계약서를 꾸미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이를 통해 받은 수수료를 우회 수취해 은닉하는 방법으로 거액의 소득과 이와 관련한 세금을 탈루했다. 부동산과 고급차를 구입할 비용이 필요할 때마다 해외에 숨겨둔 자금을 몰래 빼와 요긴하게 썼다.
국세청은 C에게 수 십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