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국세청에서 9급 말단직원으로 출발해 지방국세청장 타이틀을 거머 쥔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상당수 있었다.
박찬욱 전 서울국세청장, 조용근 전 대전국세청장, 하종화 전 대구국세청장, 김정민 전 광주지방국세청장 등이 대표적 인물군에 속하다. 이들은 9급 공채출신의 희망이자 롤모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국세청 조직에서 9급 공채출신 가운데 이들의 족보를 이을 수 있는 능력있는 관리자들을 앞으로는 찾아 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 나오고 있다.
◆9급 공채 출신, 특별승진해도 고공단까지 35년 소요
국세청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매년 2번에 걸쳐 서기관(4급) 승진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행정고시, 7급 공채, 세무대, 9급 공채 출신자 등 승진인사시 수요와 공급에 맞춰 임용구분별 승진자를 배출해 왔다.
임용시점을 고려할 때 행시, 7급, 8급 출신들은 9급 공채 출신자에 비해 승진소요 연수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하지만 9급으로 공직을 시작한 경우 고위공무원단(일명 고공단)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매 직급별로 5년 주기로 특별승진을 거머쥔다 해도 30~35년이 소요된다. 20대 중반에 9급으로 임용된다 하더라도 특별승진을 하지 못하면 고공단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 27일자로 단행된 서기관 승진인사에서 57년생부터 61년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9급 공채 출신 9명이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능력을 갖추고도 나이 때문에 고공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자원은 찾기 힘들었다.
인사상 불균형 현상은 사무관 승진인사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매년 100여 명이 넘는 사무관(5급) 승진자가 배출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9급 공채출신 사무관 승진자 가운데 50세 이하 승진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국세청의 인사특성상 9급으로 시작해 서기관 승진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최소 50세 이전에 사무관을 달아야 4급(서기관) 승진을 바라 볼 수 있다.
최근 3년간 사무관 승진자 460명(2011년 120명, 2012년 140명, 2013년 200명) 가운데 세무대 출신자로 50세 이전에 사무관으로 승진한 인원은 100여 명이 넘는다. 7급 공채 출신자도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7급 공채나 세무대 출신자 가운데 50세 이전에 사무관으로 승진한 경우는 상당수 있다. 반면 9급 공채 출신으로 50세 이전에 사무관으로 승진한 직원은 1~2명에 불과했다. 특히, 올해 단행된 사무관 승진인사에서는 9급 공채 출신으로 50세 이전에 승진한 6급 주무는 단 한 명만이 기쁨을 누렸다.
이같은 현상은 국세청 조직 내에서 9급 출신 고위공무원은 물론 부이사관이나 서기관 승진자를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임용구분별 특정 계층 쏠림 ‘심각’…인사 구조상 핸디캡 극복이 관건
임용구분별 특정 계층 쏠림현상도 심각해 앞으로 국세청 조직내에서 9급 공채 출신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 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8급으로 입사한 세무대학 졸업자들이 국세청 조직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의 두각은 다른 계층의 침체를 의미한다.
지난 9월 단행된 5급 사무관 승진인사에서 200여 명의 승진자 가운데 세무대 출신자가 60%, 7급 공채 출신 15%, 9급 공채 출신은 25%가 승진했다.
세무대학 출신자들이 국세청에 발을 들여 놓기 전까지 9급 출신들은 인사 경쟁에서 입사동기들과 힘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때와 180도 급변했다.
행정고시, 7급 공채, 세무대학 출신자 등 임용구분이 다른 계층과 경쟁을 통해 국세청의 압정식 조직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두고 일선 세무서 직원들은 “인사구조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사안이다. 입사 직급이 다른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임용구분별로 승진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임용구분별 계층간 쏠림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인사권자가 문제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일선 세무서의 한 관리자는 “9급 공채출신 직원들이 국세청 전체 조직의 75%를 점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출발선은 달랐더라도 조직의 단합은 물론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국세청의 한 직원은 “능력과 성과에 기초한 인사정책은 기본적으로 출발점이 다른 계층간의 갈등을 풀어줘야 한다. 조직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 져야 하는데 이를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앞으로 국세청의 앞날에는 희망이 없다”며 “인사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묵묵히 조직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9급 공채 출신자들이 인사상 핸디캡을 극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조직내 인사구조에 순응하면서 정년을 맞을지 관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