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당국인 정부와 기업이 최근 거액의 세금문제를 놓고 '불꽃 튀는' 전쟁이 한창이다.
그동안 정부의 기업에 대한 세부과가 잘못됐다며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최근 SK글로벌, 삼성·교보생명, 국민은행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엄청난 액수의 세금문제를 들고 과세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국세심판원의 문턱을 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에 따라 국세심판원은 정부와 기업들이 벌이는 치열한 세금 전쟁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셈.
사안별로 액수도 다르지만 다툼의 초점도 각양각색이다. SK글로벌의 경우 해당기업의 분식회계로 인한 466억원의 세부과 적정성 여부를 다투고 있고 삼성·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들은 정부의 정책적 미스가 5500억여원의 세부과로 이어졌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를 통해 9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 당한 국민은행도 조만간 법이 정한 절차를 밟아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져 국세심판원은 약7000억원에 이르는 세금부과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위치에 서게됐다.
액수도 액수이지만 각 사안들의 쟁점자체가 향후 또 다른 기업들의 유사 심판청구에 대한 선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국세심판원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심판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결국 세정당국과 납세자인 기업의 희비를 가르는 것임은 물론 세정당국의 일련의 과세과정에 대한 명백한 '검증' 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없다.
▲방향키 못 잡은 'SK네트웍스' 466억…어떤 결론 날까?
지난해 초 SK네트웍스(구 SK글로벌)의 2조원대 분식회계는 단일기업 사상최대 규모였던 동시에 그 자체가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악영향을 몰고 왔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태원, 손길승 회장 등 회사 고위 관계자들이 줄지어 구속되는 등 파장이 컸다.
그러나 SK측은 분식회계로 인한 경제 전반의 잡음이 꺼지기도 전인 지난해 9월 초 분식회계 과정에서 과다납부한 466억여원의 법인세 환급과 관련한 심판청구를 국세심판원에 접수, 또 한 번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심판원은 법정처리 기한인 90일(3개월)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뚜렷한 입장정리를 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심판원에 따르면 사건에 대한 실질조사는 끝났으며 최종적으로 청구인의 주장을 인용해 주느냐 불인용 하느냐의 여부만 가려내는 단계만 남았다.
조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심판원이 명확한 법 해석을 바탕으로 납세자의 억울함을 구제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현행 법을 무시한 채 기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실질과세라는 조세원칙에 맞지 않다며 회사의 주장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심판원은 과거 동아건설, 기아차 등 분식회계와 관련한 비슷한 사건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린 경력이 있어 이번 건의 경우도 선례를 벗어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분식회계를 통해 일반국민들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점, 분식회계 근절에 대한 국민감정을 고려할 경우 더더욱 인용결정을 내리기 힘들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판원이 비록 불인용 결정을 내려 돌려보낸다 해도 청구인측인 SK네트웍스가 추가적으로 행정소송 제기 등의 대응방안을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이 건을 둘러싼 논쟁은 장기전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 자산재평가차익 과세…정부 정책미스? 생보사 책임?
지난해 10월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들이 정부가 제시한 상장방안에 공감하지 못하면서 상장이 완전 무산되자 재정경제부는 상장을 조건으로 지난 13년간 유예해 왔던 생보사들의 자산재평가차익에 대한 법인세 과세유예 조치를 더 이상 연장치 않았다.
이에 화답하듯 국세청이 곧바로 올해 초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들에 엄청난 액수의 금액이 찍힌 세금고지서를 발부했다. 이 액수는 자산재평가 차익에 대한 법인세는 물론 13년 동안의 과세유예에 대한 가산금까지 붙어 어마어마한 액수로 불어난 것.
이들 두 생보사들은 최근 연달아 정부의 세금부과 자체가 잘못된 처사라고 주장하며 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삼성생명 3140여억원, 교보생명 2300여억원 등 세금규모만 5500여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심판청구 건이다.
현재 심판원은 국세청의 최종답변서가 날아온 교보생명건은 주심 심판관(채수열 상임심판관)을 배정하는 등 본격적인 심리절차에 착수한 상태. 삼성생명건의 경우 국세청 최종답변서가 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심판원은 이 건에 대한 최종답변서가 오는대로 사안이 같은 교보생명건과 병합심리를 진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두 건의 경우도 세정당국의 과세 적법성의 여부를 가려달라는 취지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접수되는 개인납세자들의 소액심판청구와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심판청구를 제기한 생보사들은 이번 과세결정이 정부의 정책실패에 따른 책임을 생보사들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심판원의 결정은 생보사 상장무산에 대한 책임소재 여부를 분명히 가려내는 '잣대' 가 될 수도 있어 더욱 관심을 끌 전망이다.
심판원도 국세청의 과세 논리와 생보사들의 과세불복 논리를 종합적이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과세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건 처리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실적배당신탁 운용손실을 은행이 부담하고 세법상 손비처리한 부분과 관련해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를 통해 거액의 세금을(994억원) 추징 당한 국민은행도 조만간 적법한 절차를 밟아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정부와 기업들이 벌이는 '세금전쟁' 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