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 이슈를 집어삼켰던 '문창극 사태'가 2주만에 막을 내렸다.
문 후보자는 지난 10일 안대희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낙마한 뒤 '구원투수'로 깜짝 등장했다. 그동안 총리 후보자들의 이력과 달리 언론인 출신이란 특이한(?) 이력 덕분에 언론의 고강도 검증이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문 후보자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 다음날 한 교회에서 '일제시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연한 내용이 보도되면서 '친일' 논란이 시작됐고 현재까지 그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문 후보자가 과거 총리 또는 장관 후보자들이 곤욕을 치렀던 병역비리, 전관예우, 논문표절, 위장전입 등의 문제가 아닌 전혀 다른 양상의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서 여론도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문 후보자를 감싸던 여당마저 등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모든 정치 일정이 '올스톱' 되면서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구성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사표를 낸 정홍원 총리는 몇 달째 어쩡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비슷한 상황이다.
6월10일 '우편향' 논란 점화, 조기진화로 사태 수습
문 후보자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자 관가는 물론 정계까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법조인 출신 혹은 각종 사태로 중요성이 부각됐던 정무감각이 있는 정치인을 총리 후보로 내세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언론인 출신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가 잘 안 알려져 있던 탓에 정치권은 어떤 반응을 내놓아야 할지 몰라 한동안 설왕설래했고 관가는 공무원 조직에 몸 담은 경험이 전무한 언론인 출신이 과연 내각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워낙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야당과 언론은 문 후보자가 과거에 썼던 칼럼 등으로 눈을 돌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것을 비판한 것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의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까지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 영향이 어떻겠는가. 백번 양보해 자연인으로서의 그의 선택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국가의 지도자였던 그가 택한 길로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칼럼을 썼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해 야당에서는 '극우파'로 몰아세우며 총리직을 수행 하기에는 편향적 사고를 가졌다고 비판했다.
사태가 불거지자 문 후보자는 과거에 작성했던 칼럼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사과를 한다고 밝히는 등 조기진화에 나섰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6월11~12일 친일 논란 대두, 文 '강수' 대응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영상이 모 언론사를 통해 보도되면서 총리 후보로 지명된지 하루 만에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문 후보자는 지난 2011년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일제 식민지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의 게으른 DNA 때문에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다"고 발언했으며 제주 4.3사건 희생자에 대해선 '폭도'라고 규정했다.
또한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어 주셨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야당은 즉각 반발했고 국민 여론 또한 급격하게 악화됐다.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사람의 역사관이 편향적이란 우려가 확산됐고 문 후보자의 과거 칼럼 등의 문제는 모두 묻히게 됐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보도한 언론사가 특정 부분만 도려내 보도했다며 사과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심지어는 해당 언론사를 고소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하는 '강수'를 뒀다.
6월13~15일 위안부 발언 '논란'…'사과' 반전 시도
새누리당이 한 시간이나 되는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영상을 기자들과 시청하며 여론 반전을 꾀했지만 다른 논란이 또 불거지고 말았다.
문 후보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으로부터 굳이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이 알려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1인 시위를 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문 후보자를 반드시 낙마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인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등 문 후보자에 대한 반감에 불을 지폈다.
문 후보자는 지난 15일 자신도 두 딸이 있음을 강조하며 "위안부 발언으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머리를 숙였지만 좀처럼 돌아선 민심은 회복되지 않았다.
6월17일 친박 '서청원' 자진사퇴 촉구, 등돌린 與
문 후보자를 감싸던 여당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조금씩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친박좌장인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문 후보자가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 잘 판단해야 된다"고 발언,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함에 따라 여당 내 분위기도 급반전했다.
전당대회 출마자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문 후보자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사태를 관망하던 여당 의원들은 서 의원의 발언 이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당의 비호를 받지 못하게 된 문 후보자는 야당으로부터 '청문회를 해도 손해볼 일이 없다'는 말까지 듣게 되고 오히려 여당이 상처뿐인 청문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겪게 됐다.
6월21일 박 대통령 귀국, 사태 처리 '고심'
문 후보자 인사청문회요청서의 국회 제출을 재가해주지 않았던 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21일 귀국한 뒤 '장고'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문 후보자에게 자진사퇴를 설득하고 있지만 문 후보자가 이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명 철회를 할 경우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탓이다. 자진사퇴 말고는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할 마땅한 카드가 없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장고를 거듭하는 동안 물밑에서는 문 후보자를 설득했다는 설이 힘을 얻었다.
6월23일 文 조부 '독립유공자', 여론 반전 '역부족'
국가보훈처는 23일 문남규 애국지사가 문 후보자의 조부와 동일인이라고 발표하면서 여론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친일' 논란에 휩싸였던 문 후보자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라면 무작정 문 후보자가 친일이라고 비판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자칫하다가는 비판하는 쪽이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
하지만 보훈처의 발표에도 여론의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과 관가의 시각이었다. 이미 친일 논란과 위안부 발언 등 여러가지 문제가 터진 상황에서 조부가 독립유공자였다는 것만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긴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대세였다.
6월24일 文 '자진사퇴', 정치권·언론 '쓴소리'
문 후보자는 24일 옹전 10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총리직 자진사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는 그동안의 사태에 대한 문 후보자의 설명과 해명이 이어졌다.
문 후보자는 야당 의원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청문회를 하지 말자며 등을 돌린 것에 대해 섭섭함을 드러냈고 같은 언론 출신인 언론인들마저 문 후보자를 공격한 것에 대해 '사실을 오도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조부인 문남규 애국지사가 독립유공자임을 밝히며 "할아버지가 삼일운동 때 만세를 부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듣고 자랐다"며 그동안의 친일 논란을 불식시키려 했다.
끝으로 문 후보자는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퇴장 함에 따라 14일 동안의 '문창극 사태'는 막을 내리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