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보증·고령자 대출 규제 등 개선 요구 거절
위험 투자 막기 위한 규제 등은 그대로 유지
금융위원회가 금융 규제 개혁을 위해 업계에서 제안한 1659건의 과제를 검토한 결과, 약 703건을 개선하기로 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의 제안은 거절당하거나 장기적 과제로 남게 됐다. 이 중 금융위가 수용하지 않은 규제는 544건에 달한다.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나 금융 질서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규제에 대해서는 불수용 이유를 밝혔다.
□"소비자 보호가 우선"…업계 요구에 난색=지난해 폐지된 연대보증 제도는 금융권의 대표적인 규제로 꼽혔다.
협동조합업계는 서민금융기관으로서 가족, 친지, 지인이 일정한 금액 안에서 연대보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으로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축은행 광고 규제도 그대로 유지된다. 저축은행업계는 현행 저축은행중앙회의 심의 제도를 폐지하지고 자율적으로 광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지난 저축은행 부실 사태 후 후순위채권의 불완전 판매에서 드러난 문제와 같이 광고가 상품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을 경우 선량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위험이 크다는 입장.
이와 함께 고령자가 담보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80세 이상의 채무자가 기술보증기금 채무를 분할상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와 금융 건전성 유지를 위해서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영업 규제 풀어달라" 답답한 금융 업계=현행 은행법은 금산(金産)분리를 지키기 위해 은행이 비금융회사의 지분을 15% 초과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은행권은 벤처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이를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은행이 비금융회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거나 비금융 업무를 운영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거절당했다.
또 미성년자 명의의 금융거래 시 가족관계 확인서 등 유효기간을 발행일 기준 3개월 이내로 제한되지 않도록 완화해 달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탈세 목적의 사망자 명의 악용이 우려돼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저축성 보험에 대한 보험 기간 15년을 폐지해 달라고 건의했다. 고령화 진전에 따라 보험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금융위는 현재 손해보험사의 장기보험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보험 기간을 더 확대하는 것은 장기 운용 리스크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망 분리 비용 절감을 위해 한 대의 컴퓨터에서 은행 업무와 인터넷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의견과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가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해달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용카드업계에서는 부수 업무를 확대하고, 신규 가입 회원에게 연회비의 10%를 초과하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게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과당경쟁이 심화될 것을 우려해 거절했다.
□"자본시장 규제, 이것만은 안돼"=이번 규제 개혁 방안에서 상당 부분은 금융투자업계와 관련이 있다. 정부의 규제 개혁 방향이 자본시장을 살려 기업과 투자자에게 경제 회복의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지만 일부 규제는 여전히 투자자 보호와 같은 이유에 가로막혀 개선 과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코스피 200의 선물·옵션 거래 시 증거금과 기본 예탁금 폐지, AA 신용 등급 이상 금융투자업자의 후순위채권 판매 허용, ELS(주가연계증권)·DLS(파생결합증권)의 편입 한도 확대 등 규제가 과도하다는 업계 건의가 제기됐다.
금융위는 파생 상품의 결제 위험을 관리하고 소액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현행 제도를 유지키로 했다.
비상장법인에 대한 지정 회계감사 제도도 제안 목록에 올랐다. 회계 업계는 회계법인뿐 아니라 소형 공인회계사 감사반에도 지정 감사가 배정되도록 법 개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정 감사의 경우 일반 감사와 비교해 더 높은 품질의 감사가 요구되는데 공인회계사 감사반은 회계법인에 비해 회계 품질 관리가 어렵다고 금융위 측은 전했다. 현행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회계분식 혐의가 있는 등 공정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회사에 대해 감사인을 직접 지정해 감사하도록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