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저성장의 여파로 업황이 불투명해진 금융권에서는 최근 들어 금융사들의 간판이 바뀌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IMF 외환위기 한파를 거치며 금융사간 인수합병은 더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지만 최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합병 과정의 몸살은 여전히 불편한 풍경입니다.
최근 ING생명에서 벌어지는 노사간 갈등은 진실게임 양상까지 보입니다.
노조에서는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할 때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전면 위배하고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측에서 입사 4년차 이상의 직원 270명을 구조조정할 방침인데 직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 직원이 퇴직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사측은 "희망퇴직 면담은 차장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되지만 희망퇴직 의사 질문 정도의 면담이지 퇴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근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간 조기통합 갈등도 결국은 약속이 발단입니다.
2012년 노사정 합의 사항인 '5년간 독립경영 보장'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다는 노조의 입장과 최근 열악한 금융환경을 고려했을 때 2017년까지 통합을 미뤄둔다면 결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측의 논리가 팽팽하게 갈려 있습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이제는 통합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운을 뗀 이후 하나-외환은행 등 그룹 전체 임원 135명의 조기통합 결의, 양행의 이사회 동의까지 걸린 시간은 채 2주도 안 걸렸지만 진통을 수습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길어 보입니다.
과거에도 금융사의 합병 당시 노사간 합의했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사례는 종종 있었습니다.
2003년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합병하며 했던 노사정 합의에서 통합은행명에 '조흥'을 사용토록 명시했지만 신한·조흥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이를 무시하고 신한은행으로 밀어붙였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수많은 약속들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기관과 기관의 협약은 물론 노사간 상생협약 등 다양합니다.
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아비바생명을 합병하며 노사 상생발전협약을 맺었고, BS금융과 경남은행, JB금융과 광주은행은 합병을 추진하며 당분간 투뱅크 체제를 유지하기로 노조와 약속했습니다.
또 씨티은행은 대규모 점포 폐쇄로 인한 노사간 벌이다가 3년간 점포폐쇄와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합의가 있고서야 갈등이 수그러 들었습니다.
물론 약속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김한조 외환은행장의 말처럼 2.17 합의서는 외환은행의 독립경영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종신보험 계약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국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람이 여자와 약속한대로 다리밑에서 기다리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죽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미생지신(尾 生之信)처럼 융통성 없이 약속을 맹신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진나라에 상앙이라는 정치인이 나무를 옮기는 간단한 행동에 상금을 주어 나라에서 얼마나 백성들을 속이지 않는 지를 간접적으로 믿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만큼 약속은 금융에서는 아주 중요한 미덕입니다.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에서 약속이 더이상 갈등의 단초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