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강제로 징집되거나, 군인들의 눈을 피해 마을을 떠난 남자들로 인해 울음소리가 끊일 새가 없었다. 3년 동안 지속된 전쟁으로 민심은 흉흉해졌고, 곳곳에 지아비를 잃은 여자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넘쳐났다.
전쟁도 전쟁이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끊임없이 뱃속에서 우리를 쥐어짜며 괴롭히던 배고픔과의 싸움이었다. 한창 클 나이에, 뒤돌아서면 배고픈 창창한 나이에 우리는 온종일 먹을 것을 찾아 들판과 산을 돌아다니며 헤매야 했고, 그러다 지치면 울면서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어머니는 배고픔에 지쳐 울다 잠든 우리 네 남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산송장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용단을 내려야 했다. 아무래도 전쟁이 쉽게 끝나 줄 것 같지 않았다. 언제 아버지가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외가로 들어갈 것이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먼 타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가지고 집을 다시 찾을 때까지. 아버진 반드시 돌아오신다.”
어머니는 그 길로 우리 네 남매를 데리고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에 있는 외가로 들어가셨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농촌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근근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도시도, 농촌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 전역이 기근과 곡소리로 가득한 때였다.
그 난리 통에 어디인들 편안하게 살 수 있겠는가. 외가라고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루하루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외가 식구들에게 네 명의 아이를 앞세운 어머니의 존재가 어찌 달가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서 오라, 잘 왔다는 인사 대신 한숨과 원망 섞인 외가 식구들의 푸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가 식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나 역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외삼촌이 내어준 작은 문간방 하나를 겨우 얻어 더부살이 생활을 시작했다. 외가 식구들의 눈총을 받으며 마치 하인처럼 이 일, 저 일을 해내야만 했던 어머니는 먼 타국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며 홀로 우시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결국 사달이 났다.
나와 이제 태어난 지 두 해가 갓 지난 남동생이 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방 한쪽 구석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된 것이다. 형과 누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얻어먹어서인지 괜찮았는데, 나와 어린 남동생은 그만 심한 양양실조 상태가 되었다.
나도 그랬지만 특히, 남동생의 병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 끼니를 거르다시피 하더니, 위와 식도가 쪼그라들어 급기야 음식 자체를 목으로 잘 넘기지도 못하고, 소화도 시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와 남동생은 날이 갈수록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복수가 차올랐다.
어머니는 이런 나와 남동생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당시 어머니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린 우리들을 바라보며 그저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무도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참기름 냄새가 가득 밴 고기를 들고 들어오셨다. 나와 동생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영양실조 상태였지만, 겨우 소화는 시킬 수 있어 천천히 씹어가며 조심스럽게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어렵게 구해온 음식을 앞에 놓고도 전혀 먹지를 못했다. 어머니가 직접 고기를 씹어 남동생 입에 넣어줬지만 금세 토하고 말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만 참기름 냄새가 가득 밴 그 고기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얼마 후, 동생은 결국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형과 누나 그리고 나는 남동생의 죽음을 목도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저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는, 그게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한없는 무력감과 두려움, 바로 그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남동생의 주검 앞에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계셨고,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한참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날 동생이 끝내 목으로 넘기지 못했던,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그 구수한 참기름 냄새 가득 밴 고기는 다름 아닌 ‘들쥐’였다.
기나긴 추위가 지나가고 어느 여름날 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따라 형과 나는 유독 배가 고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형제의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본채 부엌에 보리쌀을 삶아 건져 놓은 소쿠리였다. 형과 나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금만 먹으면 될 끼야. 티 나지 않게, 허기만 달랠 정도로 아주 조금만 몰래 먹고 오자이.”
형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다가 걸리면 외할배한테 많이 혼날 텐데······.”
나는 대뜸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면 니는 여기 있어. 나 혼자 먹고 올 테니.”
형은 덮고 있던 이불을 내던지고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방을 빠져나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민했다. 만일 걸리기라도 한다면 외할아버지에게 혼쭐이 나는 것은 물론, 어머니가 어렵게 부탁을 해서 얻은 문간방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우리 가족이 그래도 모여 살 수 있는 문간방이란 존재는 소중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때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고픔은 인간의 이성으로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형의 뒤를 따라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 없이 방을 나서고 있었다.
부엌에는 과연 삶은 보리쌀이 한가득 담겨 있는 소쿠리가 있었다. 당시에는 식량이 무척 귀했던 때라, 보리쌀과 풀을 섞거나 쌀을 조금 넣어 가마솥 한가득 죽을 끓여 며칠씩 끼니를 때우곤 했다. 보리쌀과 풀, 그리고 쌀에 비해 워낙 많은 물을 넣고 죽을 끓이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떠먹는 게 아니라 거의 마시는 수준이었다.
형과 나는 소쿠리에 담긴 보리쌀의 형태가 변하지 않게 아주 조금만 손으로 집어 각자의 입에 가져다 넣었다. 담백한 향이 입속 가득 퍼져 머릿속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곧 입안에서는 단내가 났고,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지독한 배고픔이 뱃가죽을 당겨왔다.
우리는 잠깐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것은 딱 한 입만 더 먹자는 무언의 합의였다. 형이 먼저 한 주먹 보리쌀을 집어 입에 넣었다. 처음보다 많은 양이었다. 이어 나도 처음보다 다소 많은 양을 집어들어 입속에 넣었다. 아주 잠시지만 지독한 배고픔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역시 처음처럼 지독한 배고픔을 달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부터 우리 둘은 이성을 잃고 허겁지겁 정신없이 소쿠리에 담긴 보리쌀을 입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의 호통도, 어머니의 눈물도, 영양실조에 걸려 비참하게 죽은 남동생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의 형과 내 눈에는 오직 소쿠리에 담긴 보리쌀만이 들어왔다.
정신없이 소쿠리에 담긴 보리쌀을 퍼먹던 손에 축축하고 울퉁불퉁한 소쿠리의 바닥이 긁혔다. 큰일이었다. 지독한 배고픔으로 이성을 잃은 형과 내가 소쿠리에 가득 담긴 보리쌀을 다 먹어치운 것이다. 그것은 외가 식구들의 하루분 식량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있던 형과 나를 급히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삶아 놓았던 보리쌀이 전부 없어졌다는 말에 외할아버지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진 것이다. 형과 나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팬티 바람으로 집을 도망쳐 나왔다. 한참을 내달려 뒷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형아야, 이제 어쩌지?”
형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있겠는가. 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호통을 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어느덧 해는 동천에 떠올라 우리 형제를 내리비쳤다. 형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조그만 나뭇가지를 들고 땅바닥에 낙서하고 있었다. 잠시 후, 산 아래에서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니는 형과 내 옷가지를 손에 들고 하염없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팬티만 걸친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형과 나를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내달려 오셨다.
“아이구, 내 새끼들. 아이구, 내 새끼들······.”
어머니는 우리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훔쳐 먹은 보리쌀 때문에 집에도 들어오지 못한 채 속옷 차림으로 산 중턱에서 쪼그리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돈을 벌어오겠다고 훌쩍 떠난 아버지와 하늘 아래 내 잘 곳도, 내 먹을 것도 없이 나뒹구는 인생이 어머니는 한없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를 회상해 보니, 그때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였을까?
나 역시 아이들에게 남부럽지 않게 차려주고, 입혀준다고 하여도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는데, 한창 먹고 뛰놀 나이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내동댕이쳐진 두 아이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그 당시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훗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호통을 치셨던 외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을 방문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너희가 얼마나 배고팠길래 그랬을까? 나는 너희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단다. 용서하거라이”
그럼에도 나는 그때 그 아련한 추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2011년 5월, 세무사회장의 4년 임기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경남 의령에 있는 외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몹시도 아팠던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보고 싶은 외할아버지! 그때 보리쌀을 훔쳐 먹은 외손자가 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동안 외할아버지를 미워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사랑하는 강상희 외할아버지, 그동안 몹시 뵙고 싶었습니다. 또, 그 어려운 시절에 우리 가족을 죽음에서 살려내주신 강신두 외삼촌을 비롯한 외갓집 식구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큰절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