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배가격 인상을 전격 발표했다.
내년 1월1일을 기점으로 갑당 2000원을 인상, 현행 2500원 수준인 담배가격을 4500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물가연동제'를 덧붙여 향후 물가상승률에 따라 담배가격이 오를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원론적인 측면에서 담배가격 인상에는 반대할 생각은 없다.
흡연자들의 설자리가 좁아져 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정부가 금연정책을 시행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담배는 기호품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방향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담배를 구입해 흡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가서 피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부가 금연정책이랍시고 내놓은 세부방안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정부가 금연정책의 핵심인 담배가격 인상을 위해 끌어온 방법이 사실상 '세금' 신설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개별소비세(594원)를 새롭게 과세하는 방법을 택했다. 종가세(가격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 형태로 개소세를 과세해 물가상승률이 담배가격에 반영되도록(물가연동제)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내년 1월1일 담배가격이 4500원으로 인상되지만 향후 물가상승분이 자동으로 반영, 특별한 조정없이도 담배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애초 담배가격의 대부분이 세금 및 부담금(갑당 2500원=출고가 및 유통마진 950원+담배소비세 641원+지방교육세 321원+건강증진부담금 354원+부가가치세 234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담배가격 인상은 담배소비세와 건강증진부담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는 뜬금없이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끌어왔다.
이는 명백한 '증세'다. 증세는 하지 않겠다던 박근혜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별로 큰 상관이 없는 명분을 붙여 새로운 세원(稅原)을 만들어 낸 셈이다.
정부는 담배가격 인상의 효과로 담배소비량이 34% 가량 감소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관련 세수는 약 2조80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중 개소세수로만 1조2000억원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담배소비량을 줄여 흡연률을 떨어뜨려도 세수는 세수대로 뽑아내겠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로드맵 대로 현재 43.7%인 성인남성 흡연율이 떨어지지 않고(목표 2020년 29%) 담배소비량이 줄지 않는다면?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는 더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결국 세수확보를 위해 담배가격 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뜻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담배가격 인상에도 불구 정책효과가 생기지 않으면, 그 때가서는 또 무슨 핑계를 대고 정책실패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웃기는 것은 정부가 담배가격에 개소세를 과세하겠다며 가져온 논리다.
"종가세 부과에 따라 고가담배일수록 세금이 높아 세부담의 역진성 완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 또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008년 특별소비세 명칭을 개소세로 변경했다.
특소세의 과세취지인 사치성 품목의 소비억제 및 세부담 역진성 완화라는 목적이 시대가 변하면서 사실상 희석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외부불경제를 발생시키는 재화 등에 대한 교정세적 기능에 비중을 더 두기 위한 목적"이라고 명칭 변경 취지를 설명했었다.
담배는 비흡연자 입장에서 볼 때 외부불경제를 발생시키는 재화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일본 처럼 외부불경제를 발생시키는 담배에 개소세를 부과하겠다고 설명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부는 엉뚱하게도 역진성 완화를 논리로 제시했다. 저가담배 가격 인상폭을 고가담배보다 적게 해 세부담 역진성을 완화한다는 것이다.
일부 예외도 있겠지만, 현재 돈 있는 사람도 돈 없는 사람도 똑같이 2500원을 주고 담배를 사 피우고 있다. 시중 편의점 등에서 갑당 수 만원씩 하는 고가 담배를 팔고, 이게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판국에 무슨 '역진성 완화'라는 말인가. 이는 상대적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것처럼 포장해 담배가격 인상에 대한 반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정치적 선동에 불과해 보인다.
담배가격 인상의 첫 출발점은 사실 국민건강 증진이 아니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지자체들의 밑도 끝도 없는 방만 재정운용 등으로 빚어진 재정고갈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검토되어 왔다. 국민건강 증진은 말초신경을 자극할 간판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담배가격 인상으로 늘어난 세수를 골고루 지방정부에 나누겠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담배를 통해 거둬들이고 있는 2조원의 돈 중 고작 1.3% 정도만 금연정책에 쓰고 있는 것이 현 정부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 국민들이 '건강을 지키겠다'고 외치는 정부의 태도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라에 돈이 없으니 국민부담을 좀 늘리면 안되겠냐는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부터 먼저 했다면 어땠을까.
설득력이 떨어지는 정책추진 논리를 앞세우면서 국민신뢰를 얻겠다니, 도둑놈 심보가 따로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