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예금금리가 연 1%대를 기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후 1.9%대로 떨어졌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예금을 할수록 손해를 입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이다.
통화 당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이유는 가계와 기업이 손쉽게 자금을 융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자 비용을 낮춰 자금을 풀고 소비와 투자를 증진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은 기업과 은행이 자금을 쌓아두고, 가계는 부채를 갚지 못해 언제 채무불이행에 빠질 지 모르는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경제 회생을 위한 금리 인하 정책이 역효과를 내는 것.
더 큰 문제는 은행이 부실채권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는 비율이 높아지고 예대 마진(예금과 대출 이자 차익) 감소로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가산금리를 인상, 가계의 이자 부담은 더 늘고 있다.
□ 은행·기업 자금조달 '싸게', 가계 부담 '가중' = 기업의 사내유보율은 2001년 4.6%에 불과했지만 현재 20%대에 올라서 있다. 국내 10대 그룹 83개 상장사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538조원이다.
은행의 경우 대손충당금 비율이 2010년 108%에서 2012년 158%로 50%포인트 늘었다. 2013년 115%로 큰 폭 하락 후 지난해 6월까지 115%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미국과 일본의 은행이 76%, 56%인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높다.
최성일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장은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에 의한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은 당국에서 손댈 수 없는 부분이다"며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은행들이 이자 비용을 줄인 것보다 이자 수익이 줄어든 영향이 더 크다"고 말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저금리정책은 은행의 수익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더 크다. 이자 비용을 줄여 이득을 보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계의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은 더욱 크다. 소득 대비 가계 부채의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저소득층의 가계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가능한 가처분소득에 비해 가계 부채 비율은 164% 수준.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국가 중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등 실업률이 낮고 가계 금융자산이 많은 나라들의 바로 아래이다. 미국에서 이 비율이 127%일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발생했고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번졌다.
또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 2012년에서 지난해까지 2년 사이 부채가 없던 가구 중 30%가 새로 빚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 부담으로 인해 빚이 5000만원 미만에서 이상으로 증가한 가구는 24.3%이다.
□ 은행만 아는 금리의 비밀…라이보·CD 사태 후 '신뢰 붕괴' =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이용해 예대 마진의 손실을 상쇄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가산금리는 일정한 체계에 의해 산출되지만 신용도, 담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회에서 "은행의 지난해 상반기 수익이 5조원을 넘었다. 기준금리는 낮은데 가산금리를 높여 예대 마진을 늘린 덕분이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의 관계자는 "은행의 가산금리는 시장 경쟁과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일정한 체계에 의하지 않고 움직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런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금융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나 소규모 조합이면 모를까 시중은행에서는 아무 근거 없이 가산금리를 올릴 수 없다. 은행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것 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2년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CD금리 담합 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CD금리란 은행이 양도가 가능한 예금증서를 발행해 투자금을 조달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리를 기준금리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CD금리 담합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같은 해 미국과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런던은행 간 기준금리, 즉 라이보(Libor)금리를 조작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금융 스캔들로 대형 은행들이 수십조에 이르는 벌금과 과징금을 부과 받거나 소송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내 시중은행의 경우 금리 담합 사실이 무혐의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담합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CD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가계 대출의 기준금리가 되는 만큼 대출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하거나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청구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
이후 CD금리를 대체해 코픽스(Cost of Funds Index)가 상당수의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에 적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