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세무조정내역 공개…투명성 높일 대책 필요"

"기업비리 감시위해 세무조정계산서 공개" 요구

재무제표 공시만으론 기업투명성 확보 한계 

경남기업의 정치자금 문제가 일파만파 확대되자 기업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세무조정계산서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시가 의무화된 재무제표나 사업보고서만으론 기업의 비자금조성이나 자금유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무조정계산서에는 기업의 업무 무관지출이나 과다지출 내역이 표시되기 때문에 이를 공개할 경우 자금유용 등 기업의 탈법·불법 행위를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견기업의 세무를 담당하고 있는 세무사는 “기업회계와 달리 세무회계는 기업의 불법적인 자금사용에 대한 감시장치가 강화돼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무조정계산서와 관련한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기관들 간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그동안 이런 정보가 몇몇 사람들에게만 독점돼왔다”고 주장했다.  

■ 미공개 “기업·세무사·세무당국·정치권의 이익연결고리 때문”

기업들이 공시하고 있는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는 기업의 자금지출 항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업무관련성 여부나 과다지출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있다.

반면 세무조정계산서는 기부금, 접대비, 가지급금 등 업무와 무관한 지출이 상세하게 표시된다. 그런 지출이 회사의 매출이나 이익규모에 비해 과다한지 여부도 표시하게 돼있다. 또 정상적인 업무관련 지출이라도 회사규모에 맞지 않게 과다하거나 지배주주, 임원 등 특수관계인들에게 지출한 금액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기업이해관계자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공개할 경우 기업의 비리를 차단하고 회계투명성도 높아진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금산출과 세금납부행위는 법이 정한대로 하는 법률행위인데 세액 산출내역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재무를 담당했던 퇴직 임원은 “세무조정계산서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자금지출이 불투명해지고 각종 비리와 불법의 원인이 되고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무조정계산서 공개는 기업과 세무사, 세무당국과 정치권 모두가 반대하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그들이야말로 기업의 불법적이고 은밀한 돈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법인의 자금지출에 대한 세무조정 주요 항목

■ 세무조정 투명성 덜어져 세무비리 끊이지 않아

정치권의 대형 정치자금 비리외에도 세무공무원들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세무조정계산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검찰내부보고를 보면 세무공무원의 뇌물수수 범죄가 일반공무원의 두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지난 1개월 동안에 언론에 보도된 큼직한 세무비리 사건만도 4건이나 된다. 지난 3월26일에는 경찰이 국세청 본청을 압수수색하는 이례적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최근 1개월 대형 세무비리 사건

세무업계에서는 세무공무원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기업의 세무내용에 대해 외부의 감시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기업의 세금산출내역과 세금납부금액을 세무사와 세무공무원 이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세무공무원에 대한 유혹이 끊이지 않고 세무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한 행위 가운데 매출누락, 재고조정, 매출채권 은닉, 상여금·복리후생비·여비교통비 과다계상 그리고 감가상각비나 대손충당금 처럼 현금이 지출되지 않는 비용항목 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항목의 경우 기업회계는 기업이 신고하는 그대로 재무제표에 기재하지만 세무회계에서는 기업이 비용으로 계상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해놓고 과다하게 초과하는 항목을 낱낱이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도 기업과 세무사, 세무당국만이 서로공유하고 있을 뿐 주주나 거래기업, 심지어 회사 직원들에게 조차 일체 공개되지 않는다.

■ 기업이 실제 납부한 세액은 회계사도 몰라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주주나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의 세무조사나 비자금조성 등 세무비리문제가 터져 나오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건에 관련된 금액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으로 전체 사업규모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조세비리는 형사사건으로 대주주나 주요 임원이 구속되고 회사 이미지에 치명타를 줘 영업과 자금조달 등 회사경영에 큰 손실을 주기 때문이다.

이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세무조정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세금이 경영의 주요정보가 됐기 때문에 이제는 세무조정계산서를 공시자료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 기준금리가 1%대로 하락해 초저금리 시대에 접으든데다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2~3%대에도 못미치는 반면 24.2%에 달하는 법인세와 일감몰아주기증여세, 기업환류세제 등 기업의 세부담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때문이다.

이렇게 세금이 기업경영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데 기업이해관계자들이 세금산출내역을 볼 수 없어 회사가 세금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세법 체계와 용어가 너무 복잡해 일반이 이해하기 힘들어 정보독점을 더욱 부추긴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세법도 상법처럼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법에 포함시켜 세법을 보기 쉽게 만들고 시행령이나 규칙, 통칙처럼 정부와 해당부서가 수시로 기준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사는 “현행 재무제표에 기재된 법인세비용은 실제 기업이 납부하는 법인세액과 차이가 크다”며 “세무조정계산서를 보지 않으면 회계전문가들도 법인이 당해연도에 납부한 세액을 계산해 낼 수 없다”고 실태를 설명했다.

■ “경영 혼란, 비효율 초래” vs “밥그릇 지키려 정보 미공개” 

그러나 이런 의견들에 대해 기업과 세무사, 과세당국 등 현재 세무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모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국세청 세제관련 실무자는 “기업의 납부세금 내역까지 일반에 공개하면 혼란이 가중돼 경영에 비효율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세무비리는 별도의 관리체계를 갖춰 줄여 나가고 있다”고 세무조정계산서 공개에 난색을 표명했다.

기업세무담당자, 세무사, 회계사들도 모두 비슷한 이유를 들며 세무조정계산서의 공개를 반대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는 “세무사와 세무공무원의 ‘밥그룻 지키기’일 뿐”이라며 “여기에 기업과 정치권까지 합세해 세무정보에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