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가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인수대금 전액이 하림그룹의 최대주주인 제일홀딩스에 고스란히 전가돼 자금압박이 심한데다 팬오션의 감자를 둘러싸고 주주들과 법정공방까지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벌크운임의 시황까지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팬오션의 영업실적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팬오션의 인수를 통해 사업다각화 및 팬오션의 곡물 벌크운송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사료사업 부문과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했던 하림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 팬오션 인수대금 제일홀딩스의 '빚'으로 메워야
지난해 12월 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파산부는 하림그룹-JKL컨소시엄과 팬오션의 인수합병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허가했다.
하림그룹의 팬오션 매각 방식은 8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3억4000만주, 지분율 58%)와 팬오션이 신규 발행한 회사채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결정됐다. 양해각서상의 인수대금은 1조79억5000만원이다.
하림그룹-JKL 컨소시엄이 팬오션을 인수할 경우 하림그룹 내 인수주체인 제일홀딩스는 팬오션 유상증자 금액 8500억원 중 6800억원을, JKL컨소시엄은 나머지 1700억원을 취득하게 된다.
하림그룹의 인수자금을 충당해야 할 제일홀딩스는 2014년 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으로 약 5283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2800억여원이 담보로 설정돼 있어 실질적인 가용 현금은 2400억원 선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형자산 및 투자부동산 중 담보로 설정돼 있지 않은 자산의 일부 매각이 가능하지만 영업관련 자산 비중이 높아 이를 통한 자금조달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결국 매각대금 중 2400억원은 하림그룹 자체 보유현금을 털어 충당할 예정이다.
제일홀딩스는 최근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실탄을 늘렸지만 나머지 3900억원은 대출로 메꿀 수밖에 없어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매각대금을 치루고 나면 가용현금은 바닥을 보이게 된다.
하림그룹이 지분 47%를 보유하고 있는 NS쇼핑이 2015년 내 상장될 가능성이 높아 유상증자 지원액 1700억원과 그룹 내 가용 현금, 일부 유형자산 매각 및 NS쇼핑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인수대금을 감당하기에는 벅차 추가적인 차입금 조달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팬오션 인수로 하림그룹 전반의 재무적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하림계열을 2015년 주채무계열(산업은행)로 신규 편입시켰다.
주채무계열은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이 대출 등 신용공여액이 과다한 기업을 선정해 관리하는 것으로, 2014년 말 선정대상은 신용공여액이 1조2727억원 이상인 그룹 계열이다.
대형 회계법인의 M&A 전문가는 "팬오션 인수로 인해 계열 전반의 재무부담이 가중될 경우 우발적인 리스크 발생 시 하림의 재무적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팬오션 소액주주, 무상감자에 반발 '법정공방'
여기에 하림은 최근 팬오션 기존 발행주식의 감자문제로 주주들과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1일 팬오션은 하림의 인수대금을 이용해 회생채무를 조기 변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변경회생계획안을 서울중앙지법 제4파산부에 제출했다. 팬오션이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변경회생계획안에는 '1.25대 1 감자'와 '회생채권 변제에 따른 현가할인(18%)'이 포함돼 있다.
변경된 계획대로 회생채무를 조기 변제하면 팬오션은 회생절차를 종료하게 된다. 하지만 팬오션의 기존 주주들은 변경안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6일 주주들은 팬오션 소액주주들이 법원에 변경회생계획안의 회계상 오류를 지적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감자안 삭제 및 조기변제할인율을 0% 혹은 대폭 취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소액주주들은 팬오션 회생을 위해 최초 회생계획안에 의해 주가 대비 60%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고 채권금액의 67%를 주당 1만원으로 출자전환 받았음에도 다시 감자를 하게 되면 추가적인 손실이 예상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기존 주주들은 팬오션의 재무안정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켜가며 감자할 필요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팬오션은 지난해 매출액 1조6000억원, 영업이익 2158억원, 순이익 7886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더불어 회생계획에 따라 부채의 일부가 자본으로 출자전환되면서 자본도 1조4000억원으로 보충됐고, 채무조정이익 등 일회성 이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751억원의 순이익이 남는다는 것. 팬오션의 자기자본이익율(ROE)는 5.3% 수준이다.
강성진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팬오션의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한 것은 고원가의 보유 선박들을 상각 처리 및 고원가 용선선박들을 조기 반납해 원가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팬오션소액주주카페 대표는 "팬오션이 지난해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변경회생계획안이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변제재원을 의도적으로 감소처리한 반면 채권액은 부풀려 채권자들에게 현가 할인과 감자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팬오션 소액주주들은 감자안 철회를 위한 의견서 제출과는 별도로 오는 6월 12일로 예정된 법원의 관계인집회에서 변경회생계획안을 부결시키기 위한 세결집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하림은 채권자들의 권리의 일부를 포기하는 만큼 주주들의 권리도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2014년 말 기준, 장부상 시간가치 할인이 적용된 회생채무의 규모는 5800억원이지만, 실제로 2023년까지 갚아야 하는 확정된 회생채무의 원금은 1조원이다. 기존 회생계획에 따르면 조기변제가 이뤄지더라도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회생채무 변제에는 최소 1조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회생채무 변제를 쓸 수 있는 자금은 9248억원에 불과해, 이번 회생계획 변경안은 채권자들이 2016년 이후 변제 받을 예정이었던 원금의 82%만을 조기변제 받게 된다.
더불어 채권자들도 감자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팬오션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팬오션 보유주식 2788만1989주(13%)에 11일 종가 기준 3150원을 곱해 계산한 주식가치는 878억원이다. 1.25대 1 감자 이후에는 산업은행의 보유주식은 2230만5591주, 주식가치는 약 702억원으로 줄어 176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여기에 산업은행은 지난 1월 산업은행에 흡수된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팬오션의 채권까지 포함해 약 1300억원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조기변제에 따른 할인율 18%를 적용하면 약 233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이에 따라 팬오션 매각으로 산업은행의 주식가치와 회생채권 손실 합계액은 약 411억원에 달한다.
변경회생계획안은 관계인 집회에서 채권자의 3분의 2, 주주 과반수의 동의를 거치면 확정된다. 관계인 집회에서 부결이 되더라도 팬오션이 법원에 강제인가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변경회생계획은 확정된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을 경우 팬오션 인수가 무효화될 수도 있다.
□ 벌크운임 최악··· 팬오션 영업실적 악화로 이어질 전망
벌크운임의 시황이 좋지 않아 팬오션의 영업실적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팬오션의 실적은 BDI로 대표되는 벌크시황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최근 BDI는 중국의 석탄 수입 감소 등으로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강 KB투자증권 연구원은 "감자 여부가 주주가치에 주는 영향도 크지만 업황 변동에 따른 레버리지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팬오션의 선박 70%는 벌크시장에 투입되는데 최근 중국의 석탄 수입 감소로 2015년 영업실적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M&A 전문가는 "팬오션을 어렵게 사오더라도 재무적 부담감에 기존 주주와의 갈등까지 겹쳐 하림의 고민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