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의 촛불 시위 집회가 열렸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서 촉발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 집권여당의 해체설이 동시에 나올 만큼 정국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금명간 검찰의 대통령 직접조사가 예정되어 있는데다 촛불 시위 주최 측 또한 오는 19일 또 다시 대규모의 집회를 예고하는 등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압박강도는 더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불과 800m남짓 떨어진 효자동 삼거리 일대의 촛불 집회 모습.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뒤덮은 20만(경찰 추산 4만5000명) 인파는 일주일만인 12일 100만(경찰 추산 26만명)으로 늘어났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 했다. 100만의 천심은 촛불을 밝히고 청와대의 최고권력에게 반성이 아닌, 하야(下野)를 요구했다.
사직공원에서 시작한 시민들의 행렬은 동서로 안국역 일대로까지 향하고 남북으로는 경복궁에서 숭례문 일대까지 2.3km에 이르는 거대한 'T 자' 행렬을 형성했다.
청계광장과 을지로 일대까지 가득 메운 인파까지 더하면, 시민들의 촛불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이날 집회는 크게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대형 무대를 중심으로 무대 앞, 뒤로 나뉘었다.
대형 무대 앞쪽의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광장 일대로 뻗은 집회가 대형 콘서트장 같은 느낌이라면 자유집회 발언들이 이어진 무대 뒤 동서로 뻗은 집회는 소극장 분위기를 연출했다.
광화문광장에는 각종 협회와 인권센터, 민중연합 등의 깃발이 하늘을 수놓았고 '박근혜 하야하라'라는 붉은 표어를 든 각계각층 시민들의 외침은 저 멀리 사직터널까지 퍼져나갔다.
야3당 촛불집회 동참…"대통령, 국민 명령 따라야"
이날 야3당은 낮부터 청계 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국민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전면적으로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국민의당 당원과 모든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서명 운동에 함께할 것을 결의한다"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하야'를 관철시키자"며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했다.
야 3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저녁에는 광화문 거리에 집결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야권 대선주자들도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전국서 모인 시민들 "대통령 햐야 하라" 한 목소리
◆…경복궁을 둘러싼 시민들은 동그랗게 둘러 앉아 자유토론 시간을 갖고 현 시국에 대한 본인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이어 나갔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도 없고, 지역감정이나 세대차이도 없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대통령 하야'와 '철저한 검찰 수사'를 외쳤다.
"지난 3년8개월 동안 속은 것도 분통터지는데, 앞으로 남은 대통령 임기 1년4개월을 어떻게 버티겠나."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외침은 한결 같았다. 진보와 보수간 이념 갈등도 없고, 남녀노소 차이 또한 없었다. 진보는 현 정부의 무능과 무지에 충격을, 보수는 믿었던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에 분노를 표출했다.
서울 마포구의 30대 남성은 "학교를 다닐 때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는데 당시 보수 진영은 진보 세력의 '무능'을 꼬집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무능을 넘어 무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송파구의 50대 여성은 "지금껏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만 믿고 기호 1번을 찍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며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 믿고 뽑았는데 뭣도 모르는 무속인에게 나라를 통채로 바친 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크게 분개했다.
경북 상주에서 상경했다는 50대 여성 역시 "사드배치와 공항부지 문제로 가뜩이나 TK 민심도 좋지 않은데 이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며 "새누리당도 대통령을 감싸려고만 하지 말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에서 온 교복차림의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4.19 민주항쟁과 6월 민주항쟁을 배웠는데 이런 역사적인 민주항쟁에 참여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이런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이끌게 해준 박근혜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반어법 섞인 발언으로 시민들의 갈채를 받았다.
남양주에서 왔다는 두 여중생들 또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어도 무당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는 절대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며 "(정유라) 영상보니 말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것 같던데, 그런 사람이 이화여대에 입학한 사실이 너무 억울하고 소름 돋았다"며 울부짖었다.
가족단위로 집회에 참가해 자녀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전하는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참석한 한 부부는 "아빠도 어렸을 적 이런 일(1987년 6월 항쟁)이 있었다"면서 "대통령이 나라를 잘 다스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국민들이 이렇게 시위하는 것"이라며 자녀들에게 집회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각계 단체들의 발언들도 이어졌다.
충남에서 올라왔다는 한 노동단체 일원은 "지금 상태에서 대통령이 외국과 조약을 체결한다고 외국이 이를 인정이나 해주겠냐"며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하든, 국회가 다수결로 탄핵하든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 여성단체 회원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내각이 총 사퇴하고 새누리당도 해체 수순으로 가는,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현 지도부에게 개혁을 주문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청년 단체는 "얼마전 조선일보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검찰 조사 사진이 기사화됐듯이 검찰이나 법조계가 어영부영 넘어가려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언론들도 이 문제를 보도하기 전까지는 다들 침묵한 공범이므로 이제부터라도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찾아내 시민들 편에서 보도해주길 바란다"며 언론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촛불 집회는 오는 19일(토)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다시 한번 열릴 예정이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소속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매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오는 17일(목) 2016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자유의 몸(?)'이 되는 고3 수험생들의 합류도 예상됨에 따라 촛불 집회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