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생활 35년 중 분식회계사기관련 공청회·토론회·입법타당성조사·연구발표회 등이 올해처럼 빈발한 적이 없다.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 가결의 초대형 사건 속에서도, 회계제도개선에 대한 금융당국과 각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입법안도 10여건이 넘는다.
회계사기 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자처벌, 분식기업의 손해배상강화, 과징금 대폭 상향, 회계부정연루자 재취업금지, 담당회계사 책임강화, 회계법인 대표징계, 감사감리강화와 감리인력증원 등은 거액의 회계사기가 터져 공익피해를 일으킨 후의 사후약방문적 개정안들이 대부분이다. 딱 하나 내부고발자에 대한 포상금 대폭 상향 규정이 그나마 회계사기를 예방하는 방안이다.
분식회계사기를 예방하고 회계도둑이 공개시장에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비용과 큰 손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감사공영제이다. 현행과 같이 개별 영업방식에 의한 자유선임사영제가 아니고, 공기관이 균형배정하는 방법이다.
피감기업의 물적자원(자산, 부채, 자본, 매출, 손익)과 인적자원(대주주오너, 회장, CEO, CFO, 재경실무자)으로부터 독립된 정부급 공기관이 사회적 합의로 배정요소(규모, 업종, 인원수, 역사, 해외연계성, 품질, 인지도)를 정한다. 이들을 인공지능컴퓨터로 돌리면, 공정하게 배정되고 잡음도 없을 것이다.
이 경우 피감기업 입장에서 외부감사인선정을 위한 선택과정상의 복잡한 인맥과 회장쪽지전달, 전직예우와 정관계로비 등의 내부갈등이 줄어든다. 모든 회계법인과 그 많은 회계사들의 영업, 마케팅 노력과 시간 등 사회적 낭비 등, 양쪽에서 대폭 줄일 수 있다. 또한 영업활동 대신에 실제 재무제표분석과 현장감사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어, 감사품질도 대폭 향상될 수 있다.
강도·살인행위는 물적증거와 단서를 남기므로 완전범죄가 힘들다. 좀도둑도 길거리 CCTV로 다 찍히므로 대부분 잡힌다. 금융사기도 은행을 통한 자금이체송금증거를 남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제왕적 대통령들의 친인척과 주변인들의 부정비리행위도 모두 걸려 단죄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과 물건과 돈이 오가는 거래는 물리적 증거와 단서가 남고, 범죄자들간의 일방행위를 타방행위가 가려주지 않는 죄수의 딜레마 현상으로 비교적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회계는 모든 거래행위가 숫자로만 표시되고,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사람과 물건이 오고 갈 필요가 없는 추상적 행위이다. 실제거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결과물도 재무제표 한 장이며, 꼭 컴퓨터프로그램으로 작성하거나 온라인을 거쳐 갈 필요도 없다.
게다가 회계는 차변(왼쪽)거래와 대변(오른쪽)거래가 동일금액인 좌우양면 대차평균의 복식부기원리로 움직이다. 따라서 자산·재산의 왼쪽사기행위를 부채·자본의 오른쪽 사기 행위가 같은 금액으로 가려주면, 재무제표 작성자가 스스로 자백하고 설명하기 전에는 타인이 알기 어렵다.
일례로 100원짜리 동전의 뒷면 이순신장군 얼굴 전부를 떼어가도 그냥 덮어놓으면 100원이다. 그러나 흠있는 동전이므로 100원 가치는 없어지고 고철일 뿐이지만, 장부상 100원으로 기재되어 반대쪽 흠을 덮어준다.
예를 들어, 과잉계상 회계사기는 왼쪽에 공사미수금 2조원과 오른쪽에 매출액 2조원을 대응시키고, 왼쪽에 공사원가 1조원 오른쪽에 공사미지급금 1조원을 대응시키면, 1조원(＝매출 2조원-원가 1조원)의 회계이익을 부풀릴 수 있다. 근거자료를 조작하거나 순이익에 상응하는 현금흐름자료를 혼탁시키면 좌우계정에 동일거래금액이 올라가 외관상 문제없으므로 누구나 속을 수 있다.
반대로 과소반영회계사기는 왼쪽에 부실자산 1조원과 오른쪽에 해외조달금융부채 1조원을 다같이 누락하고, 거래원천을 아예 삭제하여 장부외거래로 만들면 역시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외부회계감사는 재무제표작성자가 설명하고 제시하는 대로 듣고 심사(Audit)하는 과정이다.
음악과 무용의 오디션(Audition)은 실연상황을 전부 보고 채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계감사는 기업의 1년간 실물거래가 완전히 종결된 후, 집계된 결과치를 보는 것이므로, 회계감사기준은 과거의 모든 것을 의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회계사는 못마땅하지만 의심꾼이다. 그러나 감사인은 수사권이 없고 너무 약한 을이어서, 근거자료요청도 제대로 못한다.
따라서 깊은 곳까지 완전히 입증하지 못하면 피감기업 숫자에 속는 것이다. 실제로는 재무제표작성자의 완전한 자백, 이것이 유일한 감사증거 입수방법이다. 그러나 경영이 악화된 악덕기업의 재무담당자는 모르쇠로 입을 닫는다. 하급경리실무자는 실제 모르기도 한다.
비싸게 산 정장이라도 옷감이 나쁘면, 한번만 입어도 후즐근해서 품질에 실망한다. 고가음식도 먹으면서 금방 식재료 품질과 맛을 알 수 있다. 호화주택도 잘못 짓거나 철근자재를 적게 쓰면 금방 금이 가거나 기울어서 부실공사를 알 수 있다. 법률업무도 민·형사소송의 진행과정과 승소·패소여부로 변호사 태도와 능력을 분간할 수 있다. 입원해서 수술한 치료효과도 퇴원시점에 잘 꼬맸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도로나 교량 등 공공재는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으로 파손되거나 무너져야 부실을 알 수 있다. 분식회계사기의 경우도, 피감회사의 재무제표작성실무자가 완벽히 고백하기 전에는, 외부감사인이 회계사기를 파헤쳐내기 어렵다. 검사가 증거로 압박하거나 임의유죄자백받아도 무죄판결로 뒤집히는 것에 비견된다. 거액회계사기일수록 경영실적과 재무상태악화로 인해 은행대출중단과 차입금회수 및 주가폭락 등이 터져서 거액의 공익피해손실을 일으킨 후에야, 피감회사가 분식회계사기행각을 벌였는지 알 게 된다.
여기에다 아직 현행법에서는 분식회계사기를 고의적으로 주도한 대주주오너·회장·CEO·CFO 등 경영진과 재경실무책임자에 대한 처벌규정도 미약하다. 분식회계사기로 얻은 거액의 주가차익이나 성과급의 극히 일부 보석금만 내도 풀려나온다. 이미 분식회계기업에는 쓸만한 재산은 전혀 없고, 거액금융부채만 남은 빈껍데기 회사이다. 따라서, 채권자와 주주 등 선량한 투자자들이 민·형사소송에서 대승을 거둔다 해도 아무것도 건질 게 없다. 그러니 애꿎게도 역시 피감기업의 교묘한 분식회계사기에 철두철미하게 속은 회계법인만 손해배상연대책임으로 끌려다닌다.
분식회계사기를 더 잘 예방할 수 있다고 많은 학술논문에서 검증되고 있는데도, 지정감사는 선진국 사례에 별로 없다 하여 기업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분식회계사기를 예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감사공영제나 지정감사방법을 도입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역발상전환을 실행해 볼 때가 되었다. 투명회계와 독립적 외부감사는 불특정다수를 위한 절대적 공공재이므로 지정감사제도를 한다고 해서, 코리아를 디스카운트 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지정감사해 보면, 선진국 등 상당수가 따라올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