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 안 되는 이유

경제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진다. 그리고 그걸 화폐라고 했을 때는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화폐의 가치는 올라간다.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면 물건을 가격은 떨어진다. 화폐의 공급이 늘어나면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건의 가격은 올라간다. 이건 경제학의 아주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화폐의 무절제한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다. 돈을 너무 많이 찍어서 인플레이션을 겪은 사례로는 1920년대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이 가장 유명하고, 최근의 일로는 2000년대말 짐바브웨의 2억% 인플레이션이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이 쉴사이 없이 돈을 찍어내고 있다. 이른바 양적완화이다. 자국의 경제불안정을 화폐로 해결해 보겠다는 정책이다. 특히 미국은 1987년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한 번도 인플레이션에 대비하여 통화축소를 시행한 적이 없다.

오죽하면 미국 연방준비위원장인 버냉키가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린다고 해서 '헬리콥터 버냉키'라는 별명까지 생겼을까? 재닛 옐런 FRB의장이 들어선 후 달러를 찍어내는 일은 그만 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풀렸던 만큼 돈을 다시 회수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식 밖의 일을 미국만 하는 게 아니다. 일본과 유럽연합을 보더라도 2001년도와 비교하면 통화 공급량 확대규모가 2.08배와 2.92배에 이른다. 엄청나게 돈을 뿌리고 있는 중이다.

그럼 화폐의 공급이 늘어나면 당연히 물건의 가격이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물건의 값어치는 그대로이거나 심지어는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는 품목도 많다. 물건의 수요와 공급이 그대로이고, 화폐의 공급량이 늘어나면 당연히 물건 값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생겨야 하는 데 아니다.

왜 그럴까? 아니 오히려 저물가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내고 헬리콥터로 뿌려대고 있지만, 물가는 오히려 제자리를 유지하거나 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정말 세계는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까? 그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틀린걸까?

개발도상국의 수출이 늘었다는 것은 저임금. 저비용 생산구조를 활용한 제품생산이 늘어났음을 뜻한다. 세계의 생산기지가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 일본 → 한국 → 중국을 거쳐서 이제는 베트남, 캄보디아는 물론 서아프리카까지 공장이 이전되고 있다. 과거 싸구려의 대명사는 중국이었지만 이제는 케냐산 빗자루도 들여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도 비싸다는 이야기이다.

선진국이 양적완화를 한다고 돈을 3-5배까지 풀어서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와야 하지만,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된 생산설비의 비용은 절반이하로 줄었다. 게다가 과거 제조업 이익률이 50%정도 되었다면 이제는 10%를 겨우 넘기는 실정이다. 아직도 산업화되지 않은 지역이 엄청 많다. 그런 지역들도 속속 세계 경제시스템에 진입하고 있다.

그럼 더 저렴한 비용에 생산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화폐가 늘어나는 만큼 공급자가 늘어나고 있다. 만일 실물경제가 과잉공급하고 있지 않다면, 화폐가 과잉공급된 세계는 당연히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마땅할 것이다. 비정상을 비정상이 막아주고 있는 셈이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