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왼쪽부터 기호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기화로 앞당겨진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 복지와 일자리 공약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 극심해진 소득양극화와 청년실업문제 등으로 '헬조선'이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 영향이 크다. 저출산-고령화와 소득양극화, '헬조선' 탈출을 위해 주요 후보들은 보수와 진보 구분없이 복지공약을 내걸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각 후보들의 재원 마련의 방책으로 '증세'를 전면에 꺼내들고 나선 모습이다.
문제는 '증세'가 불가피할지라도 어디까지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는 점이다.
복지확대가 불가피한 현실에서 언제까지 '증세'를 외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 복지공약 '봇물'…재원마련 위한 '증세' 논의 불가피 = 최근 중앙선관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각 후보자들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은 평균 연 40조원, 집권 5년간 200조원 수준에 달한다.
자연증가분 세수, 세출 구조조정, 탈세 차단 등으로 메울 수 있는 규모는 10조원을 넘기 어렵다. 비과세·감면으로도 10조원 이상 충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공(空)약'에 불과한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아동수당의 연간 소요예산이 5조5621억~16조6005억원에 달한다. 기초연금 역시 현행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릴 경우 연 소요예산이 최소 18조원에서 최대 3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돈줄 마련은 '증세'로 귀결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4당 대선후보들은 세원 확충을 위한 세원효율화와 증세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한 모습. ▲고소득자 금융소득-임대소득 증세 ▲대기업에 편중된 조세감면제도 축소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MB정부 이전수준) ▲상속증여세 강화 ▲소득세와 법인세, 재산세 등 누진세율 강화 등 실행의 선후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한 입장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우선 '고소득자 금융-임대소득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앞서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세금부터 먼저 늘려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도면밀한 설계가 있어야 한다"며 "(먼저) 고소득자, 고액 상속, 고액 부동산 임대소득이 대한 세(稅)부담을 늘리고,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올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주요 대선후보, 고소득 과세·상증세 강화·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공감 = 문 후보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후 추가적 세원 확대가 필요할 경우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더 나아가 국민 동의를 전제로 한 전면적인 증세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세출조정과 함께 법인세의 실효세율 정상화를 내걸었다. 다만 고소득자 소득구간 신설 등에 대해서는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낮은 조세부담률(19%)을 OECD평균(26%)보다 밑도는 22%수준으로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증세에 가장 적극적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목적세로서 사회복지세를 신설해 복지재원으로만 충당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금융소득 분리과세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고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및 종합부동산세의 10~20%를 가산하는 방식으로 사회복지세를 신설하겠고 밝혔다. 여기에 기업들이 잔뜩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도 꺼내들었다.
□ 최종관문 '국회', 기재위 3분의2 위원 '고소득 과세' 공감 =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간에 국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증세든 감세든 할 수가 없다. 예산안 심의 및 심사 기능이 있는 국회에서 최종 통과가 되어야 하는데, 대선 후 국회가 모든 '키'를 쥐게 된다.
현 의회 구성상, 누가 당선이 되어도 '여소야대' 상황이기 때문에 국회 처리를 위해 당선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협치'가 불가피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책 연대도 꾀해야 한다.
차기 정부 출범 직후인 7월 하순~8월 초순 정부가 발표할 세법개정안이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복지공약 실현에 충당될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성 세법개정이 추진될 공산이 높다.
특히 임대소득 및 금융소득 과세와 상증세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등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담기든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되든 올해 정기국회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기재위 구성을 살펴보면 총 26명의 위원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10명, 자유한국당 8명, 국민의당 4명, 바른정당 4명이다. 이중 세법심의를 집중적으로 하는 조세소위원회 구성은 민주당 3명, 자유한국당 3명,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각각 2명으로 총 10명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해도 3분의 2이상이 복지재원 확충 방향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의 증세성 입법안이 올라와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국회 기재위 관계자는 "사실상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이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방향이나 상증세 강화, 고소득층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주장하고 있어 (올해 정기국회에서)예년보다는 (세법의)변화가 크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대선이 끝나야 각 당의 입장이 보다 명확해지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예단할 수 없다"며 "각 당의 안들이 있어서 올해 기재위 세법 논의는 어느 때보다 격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기재위 관계자는 "고소득층의 금융소득이나 부동산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득양극화, 조세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도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를 반대만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역시 고소득층에 대한 금융소득-임대소득 과세나 상증세 강화 등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오 교수는 "상증세나 고소득층 자본소득 과세, 비과세·감면 축소 등은 사실 세수증대가 크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세불평등을 바로잡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이번 대선 후보들 다수가 이 부분에 동의를 하고 있어서 국회 처리가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 "증세 핵심은 법인세, 기업 저항 클 것" = 증세의 핵심은 '법인세'다.
증세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세목이 법인세이기 때문이며 이명박 정부의 감세조치 이후 수 년 동안 법인세율 문제를 놓고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져 왔다.
현재 국내 법인세율은 최고 22%(과표기준 200억원 이상)다.
각종 조세감면혜택 등이 가미된 실제 법인들이 적용받는 세율(실효세율)은 18~19% 수준에 불과, 실효세율 인상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난 기업의 저항과 세계적 추세를 감안하면 법인세율(명목세율) 인상을 바로 시도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은 유 후보와 심 후보가 주장하고 있지만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실효세율 우선 인상을 밝히며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문 후보와 안 후보 또한 정 안되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인세율을 끌어 올린다는 정책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요약하면 차기 정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법인들의 세부담 증가는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기재위 관계자는 "증세의 핵심이 법인세"라며 "실효세율 인상까지는 합의를 이루어도 후보들의 복지공약을 보면 실효세율 인상만 가지고는 재원마련이 힘들다. 그래서 명목세율을 올리자는 것인데 이 경우 기업 저항이 클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쉽지 않겠지만 복지정책 실현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 증세가 세목이나 과표구간을 신설하거나 세율 자체를 올리는 건데, 기업의 법인세는 저항이 크기 때문에 과표구간을 나누는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재위 관계자는 "아직 정부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예단할 수 없다"면서 "대선 종료 후 형성되는 사회적, 국민적 분위기를 봐야 한다. 여야 협치를 통해 우선순위를 놓고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무턱대고 증세부터 들이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