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북한과학기술연구(3집)'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79년 2월 주전산기 국산화에 착수해 1981년 10월 고밀도집적회로(LSI)를 이용한 3세대 미니컴퓨터 '백두산-102호'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이 미니컴퓨터 개발에 나섰던 주력세력은 김책공업종합대학 컴퓨터기술대학(당시 김책공업대학 전자공학부 전자계산기강좌)이었다.
북한의 이같은 미니컴퓨터 개발은 우리나라보다 지난 88년 남한이 미국의 도움으로 개발한 중형컴퓨터(TiCom I) 개발보다 7년이나 앞선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25년사에 따르면 남한은 미국 톨러란트사 제품을 기반으로 해서 국산 주전산기로 사용될 중형컴퓨터 개발한 것이 처음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니컴퓨터는 고가의 대형 컴퓨터를 대신해 크기와 기능을 간소화한 컴퓨터로 북한이 미니컴퓨터 개발에 뛰어들었을 때는 미국, 일본, 구소련, 프랑스 등 몇 개 나라에서만 미니컴퓨터를 생산했었다.
따라서 당시 북한의 미니컴퓨터 개발수준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의 규제가 있는 한 정보산업, 과학기술 연구개발, 군수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고성능 컴퓨터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이같은 북한의 시도가 무모한 것만은 아니었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에 트랜지스터 등을 이용해 1, 2세대 컴퓨터인 '전진-111호'와 '충성-311호'를 개발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와 구 소련에서 선진 컴퓨터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고급인력들이 김책공대, 김일성대, 조선과학원 등에 다수 포진해 있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개발에 착수했지만 대공산권 수출규제 때문에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와 부품의 확보가 걸림돌로 떠올랐다. 결국 노동당이 산하 특수부서에 명령을 내려 해외에서 비밀리에 조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설계는 프랑스가 1976년에 개발한 중형컴퓨터 'MITRA-15'를 참고했지만 여기에 개발팀이 자체로 연구한 마이크로 프로그램 제어방식을 적용했다.
보고서는 "당시만 해도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등 몇개 국가에서만 보유한 이 기술을 '백두산-102호'에 도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보조인력까지 포함해 연인원 290명에 이르는 연구진의 노력으로 '백두산-102호'는 1981년 10월 마침내 개발됐다. 김일성 주석은 전시회에 직접 참석해 연구진에게 국가훈장을 수여하고 새로 개발된 컴퓨터 이름를 '백두산-102호'라고 직접 명명했다.
하지만 성공 직후 미국의 애플사가 미니컴퓨터의 성능에 버금가는 PC를 개발,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열리면서 이같은 노력은 빛이 바래고 말았다.
KISTI 최현규 선임연구원은 "미국에서 PC가 개발됨에 따라 북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면서 "현재는 컴퓨터 개발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컴퓨터업계의 흐름이 미니컴퓨터를 뒤로 한채 PC시장으로 급속히 선회하게 됐다. 따라서 LSI는 북한으로서는 쉽사리 따라잡을 수 없는 첨단기술로 인식됐고 북한의 IT강국의 꿈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북한의 주전산기 개발은 수준과 활용성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면 남한보다는 5년이상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백두산 102호 컴퓨터에는 네트워크 기능이 없고 소프트웨어의 뒷받침이 부족해 우리말도 지원하지 못하는 등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치명적 약점도 갖고 있었다.
KISTI 최현규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외부 지원없이 중형 컴퓨터를 자체 개발한 것은 특기할 사건"이라며 "당시 개발에 참여한 연구인력이 현재 북한의 IT 분야를 이끌고 있는 주력군"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