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에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명경지수(明鏡止水)이다. 맑은 거울과 정지된 물과 같이 순진무구하고 깨끗함을 뜻한다. 기업재무상태와 경영실적이 거울같이 다 비치고, 정지된 물속의 깊은 곳까지 다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정지된 물의 깨끗함도 물고기 한 마리가 휘저으면 일어탁수(一魚濁水)가 된다. 대우조선해양처럼 거대 분식회계 사건이 벌어지면 대다수 상장법인의 재무제표가 의심받고, 4대 회계법인의 일류공인회계사가 작성한 감사보고서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만다.
모든 기업이 회계투명성을 지키기는 대단히 어렵다. 정지된 물이 거울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물 속의 물고기도 유유히 움직이고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는 쫓고 쫓김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는 약육강식이 작용한다. 오히려 정지된 물은 썩을 수도 있다.
기업생태계도 늘 변화무쌍하므로 건실한 기업이 스스로 투명공시에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많지만, 악덕기업이 주가를 억지로 유지하고 더 올리기 위해 자산과 이익을 부풀리기도 한다. 비상장중견기업은 은행으로부터 차입금을 유지하거나 추가로 돈을 빌리기 위해 매출과 이익을 실제보다 늘려 잡으려 하기도 한다.
반대로 중소사업자들은 소득세나 법인세를 적게 내기 위해 재산과 이익·과세소득을 축소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즉, 현장은 명경지수 같은 회계투명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그 보단 일어탁수같은 흐린 물이거나 여러 마리 물고기가 함께 휘젓고 다니는 흙탕물 상태가 더 일상적이다.
일반적 회계기준과 기업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재무제표는 기업내부경영자나 경리실무자가 아무리 투명한 재무제표라고 주장해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좋은 점은 투명하겠지만, 숨기고 싶은 면은 분명히 흐릴 것이다.
애시당초부터 적정하게 작성된 재무제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독립된 외부감사인의 공정한 감사가 필수적이다. 외부감사는 1년 중 계속하여 상시감사가 실행되면서 기업의 회계오류가능성을 미리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연말 감사시점에 기업이 제시한 최종재무제표는 현장 회계감사결과 많은 수정사항이나 추가반영, 지적사항, 주석공시사항 등이 나오게 되어 있다. 즉, 제대로 된 공정감사는 기업의 주관적 판단이나 재무제표 반영내용을 회계사가 수정·교정하고 바로 잡아서 '적정'을 만들어 가는 수렴과정이다.
상장법인의 경우 적정의견이 99% 이상이어서 과도한 측면도 있지만, 이는 기업의 주장과 외부감사인의 판단 사이의 많은 차이점을 모두 수정·조정하여 반영한 결과물이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은 적정의견을 받지 못하면 곧바로 거래정지되고, 상장폐지 실질심사의 대상으로 직행하기도 한다. 모 아니면 도의 이런 절박한 제도가 오히려 회계투명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기업의 경영상태가 모두 다르고, 수십년 잘 나가다 갑자기 거꾸러지는 부침현상이 얼마나 많은데 99% 이상 적정의견이 나올 수 있을까. 이는 현행같이 피감기업 오너가 감사인을 입맛대로 고르고 피감기업 실무자가 감사가격도 임의로 최저입찰가로 정할 수 있는 현행 감사인 자유선임제도에서는, 고착된 갑을관계를 반대로 거스를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보안검색을 강화할수록 비행기 탑승객 모두가 안전해 지듯이 공항검색과 같은 절대적 공공재인 외부감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외부감사를 사익서비스로 보고 자유경쟁시장에 방치했으니 거액분식회계 사기로 나온 재무제표가 공개시장에 유유히 흘러다니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 탑승객의 안전과 같이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의 공익보호를 위해 공정한 감사가 될 수 있도록 지정감사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행 자유선임제에서는 기업의 윤리와 양심 및 자율적 투명경영 문화로 바뀔려면 한국적 현실에서는 최소 백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정감사제와 감사가격공영제로 변경되면 단 몇 년내에 회계투명성이 정착될 수도 있다. 서구자본주의도 1930년대 대공황과 2007년 글로벌금융위기 등이 분식회계와 직결된다고 보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회계투명성제도를 급격히 향상시켰다.
우리나라의 재벌과 대기업의 가족중심경영체제와 지배구조는 서구의 전문경영인 중심의 대리인경영지배구조와는 많이 다르다. 따라서 외부감사기술은 서구 선진국의 방법을 그대로 도입해도 무방하지만 혈·지·학연을 중시하는 한국기업과 한국인의 특성이 서구인과는 많이 다른 만큼 정부 당국 등의 공영배정제도로 일시적으로라도 바꾸어야 한다. 그런 다음 나타나는 부작용을 보완하면 별 탈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