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암초'가 떡! 긴장감 고조되는 세무사업계 = 금융위원회 주도로 외부회계감사 대상을 늘리는 개정안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세무사들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세무사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세무사들의 업무영역이 축소될 것이라며 개정 시행령 통과를 좌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한국세무사회 전경.
금융위원회가 외부감사를 받는 회사의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세무사업계에 무거운 긴장감을 넘어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다.
그동안 외부감사를 받지 않던 회사들이 외부감사를 받게 되면 세무조정 등 세무관련 업무 또한 회계법인에 함께 의뢰하는 것이 효익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세무사들의 먹거리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8일 금융위원회는 외부감사 대상 기준 강화를 골자로 한 '외부감사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는 외부감사 대상 회사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투자목적회사, 자산유동화회사 제외)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원칙적으로 모든 회사를 외감대상으로 하되, ▲매출액 100억원 미만 ▲자산 100억원 미만 ▲부채 70억원 미만 ▲종업원 수 100명 미만 중 3개 이상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외부감사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동안 금융위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등에 대해서는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을 예외적으로 정해왔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모든 주식회사와 유한회사를 외부감사대상으로 정한 후 매출액 100억원 미만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소규모 기업만 외부감사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금융위는 시행령이 개정되면 외부감사 대상 규모가 유한회사는 3500개, 주식회사는 700개 정도가 늘어나 현재보다 전체적으로 4200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일단 회계사업계는 외감 대상 기업 확대에 대해 대부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최종만 중견회계법인 협의회장은 "업계가 원했던 대로 자산 기준이 12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줄었다. 외부감사 시장이 커지는 것인데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특히 외감 기준을 완화시켜 생기는 증가분은 대부분 중견·중소회계법인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반색하는 회계사업계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 것이 세무사업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세무사회는 지난 10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이에 대한 긴급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이창규 세무사회장은 "금융위가 추산한 외부감사법 대상 법인의 증가 수치는 경제성장 등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실제 대상 범위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관계부처에 건의서를 제출하고 국회 등 기타 필요기관에 입장을 전달하는 등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세무사들 "회계법인에 일거리 뺏기나"…발만 동동
◆…'결사반대' 결의 = 한국세무사회는 지난 10일 서초동 세무사회관에서 개최된 상임이사회에서 외감법 시행령 개정을 두고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 개정"이라고 주장했다.
세무사회가 외감법 개정 추진에 반대하면서 전면에 내세운 논리는 '기업부담 증가'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 안 그래도 비용부담이 가중된 마당에 중소기업들이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회계감사 보수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모는 법 개정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논리일 뿐, 세무사업계가 걱정하는 대목은 '일감' 감소에 대한 우려다.
외감대상이 된 회사는 기장, 세무조정 등 기존 세무사들이 수임해왔던 세무관련 업무를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으로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즉 세무사들의 업무영역이 축소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는 세무사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 세무사는 "이번 개정안으로 외부감사를 받게 된 회사들은 기장이나 세무조정, 고문 등의 업무를 아예 회계법인 쪽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 결과 세무사들 사이의 경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세무사는 "규모 있는 중소기업은 회계와 세무를 분리해 별도로 자문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회계법인에서 '감사와 조정 등의 업무를 같이 맡기면 수임료를 저렴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업역이 침해될 가능성이 다분해 진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세무사업계는 외감대상 기업 수의 증감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지난 2014년 금융위가 외감대상 비상장법인의 외감대상 자산기준을 100억원 이상에서 12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을 공포하자, 세무사들은 업무영역의 침해 요소가 해소됐다면서 일제히 반겼다.
당시에도 세무사회는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져 외감대상 자산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 외감대상 자산기준이 상향조정 되도록 노력해 왔다.
당시 세무사회 관계자는 "외감대상 자산기준이 120억원 이상으로 상향된 것에 대해 회원들은 환영하고 있다"며 "총 2100여개 업체가 외감 대상에서 제외돼 회원들은 회계감사를 빌미로 회원들이 수임하고 있는 중소법인에 대한 세무업무를 뺏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정책 방향 역행", "위기는 곧 기회", "세밀한 개정 필요"…갑론을박 치열
단순 논리로는 기업의 '회계투명성' 제고라는 이번 개정안의 명분을 뒤집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세무사업계 내에서도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행령 개정에 위기감을 느끼는 세무사들은 업무영역 축소 외에도 다양한 반대논리를 제시한다.
한 세무사는 가뜩이나 최저임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거액의 회계감사 보수를 추가로 내야 함에 따라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개정안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방향에 역행하고 있으며, 종업원 수를 300명 미만에서 100명 미만으로 하향조정한 것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개정안이 시행된다 해도 진정한 회계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외부감사와 세무관련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없도록 해야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세무사는 "미국은 법 정비를 통해 회계감사를 하면 다른 것은 일체 자문하지 못하도록 했다"며 "우리나라도 외부감사를 하면 다른 컨설팅을 못하게 해야 하는데 미국처럼 엄격하게 법 제정이 되어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세무 문제도 봐줄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명분상 회계투명성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외부감사와 관련된 기장, 조정, 자문 업무 등을 같이 할 수 없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이 동반되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회계투명성 강화 목적 달성도 힘들 것이고, 회계사 일자리만 늘려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일각에선 이번 개정안이 세무사들에게 끼칠 영향이 크지 않다며 오히려 이번 일을 세무사들의 능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야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세무사는 "세무사들도 이번 개정으로 기장대리 등 세금신고 위주의 업무에서 벗어나 회계이론에 충실해 졌으면 한다"며 "회계가 세금을 신고하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업주의 생각도 달라지고 이에 따라 기장수수료도 인상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