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어릴 적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곤 했다. 가사를 음미하기도 전에 왠지 모를 심리적 당김이 있었다고 할까.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던 어느 날 이곡은 나의 노래방 18번이 되어 있었다.
20~30대에는 새로운 직장, 친구,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이 분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 일면식도 없던 낯선 사람들이었는데 정말 바람처럼 나타나 지금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되어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40대를 넘어서면서부터 그동안 내 주변 가까이에 언제나 있을 것 같았던 분들이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부모님이 그렇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부분을 인식하며 살지 않기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매정한 얘기를 해서 상처를 주거나 다투기도 한다. 아마도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영원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들은 내년, 내후년의 미래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산다. 왜냐면 그냥 지금과는 별반 다르지 않을 내년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보니 현재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직장인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처음 얼마 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떠 책도 사고 학원도 다닌다. 하지만 생각처럼 진도도 안 나가고, 우여곡절 끝에 처음 치러본 시험결과는 허망을 넘어 좌절 수준이다. 그때부터 고시낭인이 된다.
차마 꿈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남들 가는 휴가도 안가고 회식자리도 일부러 피해보지만 어느덧 별다른 진전이 없이 '나 공부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주위에 얘기만 할 뿐 그냥 그런 수험생이 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해도 과연 맞을까?
자신의 삶이 불행해 보인다. 남들은 지금쯤 휴가지에서 태양과 바다를 바라볼 시점에 도서관 한구석에서 집중도 못하고 잠만 쏟아지는 자신이 처량하기만 하다.
결혼, 취업, 출산 등 모든 것을 유보한 채 이렇게 살려고 그동안 숨 가쁘게 살아온 것인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응원을 기대하기는커녕 지쳐 가고 있는 그들의 날선 표정에 스스로도 지쳐만 간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곡에서 내가 또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불행은 상대적이다.
고호 즉, 빈센트 반 고흐는 나이 37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네덜란드 태생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한 그는 '별이 빛나는 밤'시리즈나 '해바라기'로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 정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다.
하지만 그는 작품 활동기간 내내 동생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요즘말로 가족에게 민폐 끼치는 '백수'였고 평생 단 한 점에 그림밖에 팔지 못한 '루저'였다.
우린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내 현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남들과 비교해 과연 난 행복한가? 성공하고 있나? 과연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으며 합격할 수 있을까?'
2주가 지나고 나면 2차 시험장에 앉아 있을 많은 수험생에게 얘기하고 싶다.
"남은 기간 동안 정말 해야 될 일은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어제의 자신 또는 지난번 회독 수를 마쳤을 때의 자신과 비교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에 위안을 받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힘들다면 평생 루저로 살았던 고흐를 떠올려보며 상대적 위로를 받는 것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