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2018년 세법개정안의 알파와 오메가는 단연 '보유세(종합부동산세 개편) 강화'로 요약된다.
종부세 개편의 기저에는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와 서민들의 주거안정, 과세형평성 제고, 소득재분배 등 정권 차원의 정책목표가 자리잡고 있었다. 정부가 마련한 세법개정안의 큰 원칙 또한 소득재분배·과세형평 제고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과세형평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았던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 인하는 단행하지 않았다.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과세형평을 위해 종량세 체계를 도입하자는 개편안도 빠지면서 과세형평 제고라는 원칙은 부동산 부자들을 때려잡기 위한 허울 좋은 간판에 불과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부자'가 두려운(?) 정부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세율(6~42%)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 미만인 경우 14%의 분리과세가 적용되며 지방소득세까지 합치면 15.4%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정부의 세법개정안 발표에 앞서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과세형평 제고를 위해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연 2000만원 초과에서 1000만원 초과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실 이런 요구는 재정특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꾸준하게 요구되어 왔던 사안이다.
예를 들어 연 8000만원의 소득이 있는 사업자가 1900만원의 금융소득이 생겼다면 현재는 8000만원의 사업소득에 대해선 26.4%의 세율을 적용하고 금융소득 1900만원에 대해선 14%의 세율(지방소득세 제외)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연 1000만원 초과로 개정한다면 8000만원의 사업소득에 1900만원의 금융소득을 더해 과세표준은 9900만원이 되고 여기에 적용되는 세율은 38.5%가 된다. 내야 할 세금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애초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은 4000만원이었다. 지난 2013년 이를 절반으로 깎아 현재의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부부별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은 4000만원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1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도 4000만원을 못 버는 근로자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는 '불로(不勞)소득'인 금융소득을 연간 3000~4000만원씩 벌어들이는 가계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과세형평에 결코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정부가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 인하를 외면한 이유는 종부세 개편과 임대소득 과세 정상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 임대소득이 연 2000만원을 이하인 경우 그동안은 과세를 유예해오다 내년부터는 분리과세가 시행되면서 세부담이 늘어날 전망. 이에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까지 인하한다면 고령 은퇴자들의 세부담이 상당폭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소득의 분리과세 기준금액이 2000만원으로 금융소득 종합과세 역시 기준금액을 동일하게 가져가야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종부세 부담으로 부동산에서 투자금을 회수한 투자자들이 이를 금융시장에 묻어둘 경우 세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면 투자금을 다시 부동산 투자로 전환,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 아니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기준 금융소득 2000만원 이상인 종합과세 대상자가 9만여명이며 금융소득이 1000만~2000만원 구간이 31만명(2016년 기준) 수준. 이에 기준금액을 1000만원으로 내릴 경우 과세대상은 40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재정특위는 예상했다.
연말정산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던 시기에 '악몽'을 겪었던 기재부 입장에서는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이 생략된 상황에서 종부세 강화 및 임대소득 과세시행과 맞물린 '조세저항 심리' 확산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기준금액은 하향조정하되 시행시기를 부칙 등을 통해 1~2년 유예하는 형태의 입법추진도 가능하다는 측면을 감안할 때 재정특위 권고에도 불구, 정부의 '정책의지'가 결여된 것 아니겠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대체 누구인가요?"
'맥주 4캔에 1만원'인 시대를 넘어 이제는 '1만원 6캔' 패키지 상품도 등장하는 등 수입맥주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서민들이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 됐지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저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도치 않은(?) 세제혜택 때문이다.
수입맥주에는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시점인 통관단계에서 수입업체가 제출한 가격을 기준으로 주세 72%를 부과하지만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 이윤을 더해 과세표준을 정해 여기에 주세를 부과한다. 수입맥주의 원가가 1000원이고 국산맥주의 원가는 1000원, 판매관리비와 이윤이 500원이라고 한다면 수입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은 1130원이지만 국산맥주는 1694원이다.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공정 경쟁'은 꿈도 꾸기 어려운데다 국내 양대 주류회사의 맥주시장 과점 문제와 다양한 변화 등을 시도하지 않은 채 현실에 안주한 국산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발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 국산맥주업계는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수입맥주가 맥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국내 최대 맥주 제조사인 오비맥주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카스'를 역수입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국산맥주업계 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카스의 경우처럼 역수입한 맥주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상황이 고착화된다면 굳이 국산맥주 제조사들이 생산공장을 한국에 둘 이유가 희박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목메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된 것이 '종량세 체계' 도입이다. 종가세는 공장출고 시 술 1㎘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현재 이 방법으로 주세를 부과하고 있다.
반면 종량세는 생산하는 주류의 양과 알콜의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해 업계에서는 맥주에만 한정해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 국세청도 이번 세법개정안에 이를 포함시켜달라고 건의하는 등 종량세 체계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세금을 올리면 일상에 시달린 뒤 집에 가서 맥주 한 잔 마시는 서민들에게 수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 형국이다.
대형 맥주회사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유구무언' 입장이지만 주류업체 노조 및 수제맥주를 만들어 파는 소규모 업자 등은 정부의 이런 처사에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리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지난달 30일 세법개정안 발표 직후, 성명서를 내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해 어느 한 축이 무너진다면 국내맥주산업 자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맥주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