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한정희 칼럼니스트
착각이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너무나 닮았으니까 순간의 느낌이 시공을 초월한 망상의 세계로 몰아넣은 것일 테지.
지난 일요일 롯데백화점 명품관을 지나다 본 너무나 닮은 여인. 정공남(鄭公男).
아들을 원했지만 역시 딸이 나오자 사내 남(男)을 넣어 서운함을 달랬다는 이름. 그녀는 서울에서 샹송 가수로 데뷔, 뜨기 시작할 무렵, 돈 많은 오빠의 권유로 오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리브르빌에 가자. 돈 많이 벌어서 파리로 진출하자. 거기는 불어 쓴다. 돈도 현지 화폐를 50 대 1로 바꿔줘. 세파 프랑은 다른 지역의 못쓰는 현지 화폐와는 다르거든.”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는 70년대 말 쌍용에서 백화점을 지어 한인들에게 희망심기를 했다. 백화점에 진출한 한국인들. 처음의 희망찬가가 얼마 안 돼 한숨으로, 또 비통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순방할 즈음에는 「거덜 남」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그녀는 수십억을 투자해 오빠와 백화점 2층을 전세 내 아리랑 식당을 열었다. 호화판 한식점을 한 달 중 열흘 정도만 지나면 파리들만 들끓게 했다. 결국 문을 닫았다.
오빠는 미안하다며 정리하고 남은 돈 1000만 원 정도를 남겨 주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큰 희망의 뒤 끝에 매달린 엄청난 절망의 무게를 그녀는 감당해 내기 어려웠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카지노에서 술과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돈도 바닥이 나고 몸과 마음은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져 갔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태가 되자 죽고 싶다는 생각은 죽어야겠다로 변했다. 드디어 수면제를 대량 복용하고 위스키를 마신 뒤 죽음에의 여행길을 떠났다.
그랬던 그녀가 깨어나고 통나무 맥줏집을 차려 소생에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현지 교민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취재차 현지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그녀의 아픔은 과거의 상처로 남아있을 뿐 이미 사교계의 여왕이 돼 있었다.
1980년 크리스마스 때는 프랑스 방송국 초청으로 무대에도 섰고, 가봉의 대통령과 경호실, 국방장관, 국영기업체장, 은행 총재들이 다투어 찾는 대단한 거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의 「스카치 클럽」에는 밤이면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초저녁에는 정장 차림의 신사, 다음은 나이든 유럽인, 마지막 팀은 가봉을 주름잡는 흑인들로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손님들이 바뀌었다.
“교민들의 은혜는 평생 있지 않겠다.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어디서든 대한민국, 영원한 내 조국을 위해 헌신할 방법을 찾겠다.”
그녀는 죽음으로 통하는 길목에서 「참 한국인」으로 거듭나는 반전이 있었다. 감사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참 인간이 되겠다던 그녀의 명은 경인년, 계미월, 계해일 계해시 무인 대운을 잘 넘겼다면 지금쯤 파리에서 호텔도 갖고 잘나가고 있을지도 몰라. 살아있다면 어디서든 행복하길 빌고 싶다.
한정희 명리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