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미국내 전문가 의견 청취...대북 제재와 인도적 지원 관련 보도
전문가들 "코로나19 극복 위한 제재 완화와 기존 대북제재 완화는 별개"
인도적 지원, 북한의 감염 실태 투명 공개 전제...근본적 문제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단계로 접어들면서 대북 제재를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먼저 북한의 정확한 감염실태 공개와 일시적 '제재 면제'가 '제재 완화'로 연결해선 안 된다는 전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더 강했다.
◆…코로나19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고 있는 월드오미터 데이터가 1일 현재 전세계 203개국의 확진자 및 사망자 현황을 발표했지만 북한 관련 내용은 없다. (사진=월드오미터 호홈펭지 캡처)
미국의소리(VOA)방송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목적의 대북 지원과 최대 압박으로서의 대북 제재가 별개로 허용돼야 하는 지 여부에 대한 미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1일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이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위기 속에서 제기되는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은 기존의 제재 완화 요구와 엄밀히 구별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쑨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유엔 고위인사의 대북 제재 완화 언급은 공중보건 체계가 열악한 북한에 개발원조와 의료지원을 제공하자는 것”이라며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유예한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주자는 중국, 러시아의 주장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전염병 방역에 초점을 맞춘 '제재 면제'와 광범위한 제재 체제를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는 이런 논리는 북한에 이미 상당수의 환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가장 큰 무게를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촉박한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인도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출 때이지 포괄적 대북 제재 문제를 논할 여유가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스테판 해거드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 교수는 “인도주의 재난에 봉착해 당장은 구호기구들이 북한에서 재정적 어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해거드 교수는 “북한의 낙후된 보건 체계, 많은 도시 인구, 만연한 영양결핍 현상은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로 치닫는 지름길”이라며 감염증이 북한 국경을 넘어 외부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우려했다.
이어 “제재 완화가 갖는 문제점에 공감하지만 현 위기 속에서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며 “인도주의 문제에 공격적으로 대처해 이를 신속히 막아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 북한에 긴급 지원이 필요한 비상시국임을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관련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에 부딪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먼저 세계구호기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무엇보다 감염 확산 실태와 통계를 정확히 집계해 공개해야 제재 면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제재 해제를 원한다면 코로나19 발발 상황에 대해 솔직히 밝혀야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현재까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나 사망자가 없는, 즉 '코로나 청정국'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상황을 외부에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북한이 자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코로나 미발병국'이라는 믿기 힘든 대외 홍보에 집중하면서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 대북 인권단체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은 제재가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하면서 정작 코로나19 감염 사례는 없다고 주장한다”며 “북한이 이 위중한 사안을 잠재적 파괴력을 가진 보건 위기가 아니라 선전 수단으로 다루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의 이런 행동을 '철저한 자국민 무관심'으로 간주하면서 “이 정권이 수백만 명의 사망을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주민들이 알아서 대처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면서 “권력 유지를 위해 수백만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순식간에 그렇게 할 것이고, 1990년대 대기근 때 했던 행동을 언제든 되풀이할 것”이라고 북한 당국을 맹비난했다.
일방적인 대북 제재 완화와 대북 지원을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북한 특유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을 문제 삼는 것이지 취약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인도주의 원칙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 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대북 제재 완화가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인도주의 지원이 투명성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북 제재가 북한의 인도주의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제재에 대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반론이 많다고 이 매체는 언급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의료 지원을 막는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고 밝혔고,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유엔 결의나 미국법은 식량, 의약품, 혹은 인도주의 지원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대북 제재는 일반 주민을 벌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핵·미사일 개발과 확산을 막기 위해 이행되는 것”이라며 “그런 과정을 담당하는 북한 엘리트들을 겨냥한다”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고통 받아 온 것은 정권의 사회주의 경제 정책에 원인이 있고, 군대와 지도부의 지분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김정은 정권이 매년 사치품 구매에 쓰는 비용이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 지원 예산 요청액보다 세 배가 많다”면서 “주민들을 빈곤에 빠뜨린 잘못은 제재가 아니라 정권에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제재 완화의 혜택이 일반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지원은 자국민 안녕에 대한 정권의 의무를 덜어줘 북한 당국에 그만큼의 여유 자금을 허용한다는 부작용도 제기됐다.
외부 지원 덕분에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 대주민 예산을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전용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베넷 연구원은 “제재가 일시 중지되면 북한은 적어도 일부 보유 자금을 되살릴 것이고, 1~2년 뒤 핵과 탄도미사일 생산 동결에서 벗어날 경우 관련 기술을 계속 개발하기 더 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 안보리가 예초에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것은 북한의 국제규범 위반 때문이라는 점도 제재 완화를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맥스웰 연구원은 “제재를 완화해도 북한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각종 불법 행위, 인권 유린과 비인도적 범죄를 용인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위기와 별개로, 대북 제재 자체를 완화를 위해서는 분명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이유나 특수한 상황이 변수가 아니라 바로 제재의 원인이 된 불법 행위가 중단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클링너 연구원은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에 대한 대응이자 안보리의 투표로 결정되는 유엔 제재는 상대적으로 완화하기 쉽다”면서 “하지만 입법화되고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북한 인권 유린까지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미국 제재는 해제가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원한다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생산 활동을 동결해야 할 뿐 아니라, 조사관들이 방북해 이를 검증하고 생산 재개 여부를 감시하는 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