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시민권 딴 김병건 BK회장 "국내 거주자 아냐"
'이해관계 중심지 어디' 쟁점…과세전적부심선 불채택
300억원대 세금 얻어맞자, 조세심판원에 불복 제기
세무업계선 "조세회피 의도 다분해 보여" 목소리 높아
300억원대 세금을 놓고 국세청과 김병건씨가 맞선 대결에서 승패를 가린 요인은 김씨의 항구적 주거지가 있는 곳이 어딘지 여부였다. 20일 국세법령정보시스템·세무대리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과세전적부심사청구에서 "김씨는 국내 거주자다"라고 판단했다(적부-국세청-2022-0051, 11월, 불채택).
사정이야 어떻든 김씨는 의도적인 탈세범으로 낙인찍혔다. 국세청으로부터 부과받은 종합소득세(가상화폐 처분)·양도소득세(주식 처분)는 314억원에 달했는데, 그는 납부기한까지 세금을 내지 않은 채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세법에서 국내·외 소득 모두를 한국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는 거주자를 판단할 때의 중요한 잣대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두었느냐다. 단순하게 체류 기간만 따지지는 않는다. 판단 대상자의 가족, 재산, 생활 전반을 살펴보기 때문이다. 이중 거주자(세법상 이중국적)로서 분쟁이 발생했을 땐 국가 간 조세협약을 따라 거주지국을 판단하게 된다.
쟁점① 나는 비거주자입니다…그런데 활동 흔적은 다르게 말한다
◆…국세청 산하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는 BK메디컬그룹 회장인 김병건씨를 두고 "소득세법 및 한국·싱가포르 조세조약상 우리나라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8년 당시 김병건 ICO플랫폼 대표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국계 블록체인벤처 공동 투자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사진 ICO플랫폼)
국세청이 역외탈세 혐의(세법상 거주자 여부 판단)가 있다고 확신한데는 김씨의 수상한 생활 흔적 때문이었다.
김씨는 2006년에 서울 서초구 소재 아파트를 부부 공동명의로 취득했고, 이듬해 전입신고를 마친 뒤에는 2015년까지 해당 아파트에 주소지를 두면서 한국 국세청에 종합소득세 신고도 했다. 그런데 2016년부턴 싱가포르 거주자(2008년 영주권 취득·2018년 시민권 취득)라는 이유로 벌어들인 수익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과세칼날을 들이댄 기간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다. 김씨는 "주로 싱가포르에 체류하면서 싱가포르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다"고 주장하나, 국세청은 이 기간의 생활근거지를 한국으로 봤다. 국세청 과세사실판단자문위원회도 전원일치 의견(5명)으로 국내 거주자라고 자문한 사례다.
과세전적부심사 결정문을 보면 김씨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일주일에 1번꼴(1년 52주)로 국내에 입국했다. 입국 당일에 출국해서 국내 체류일수로 계산되지 않은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국내에 있는 동안엔 자신(일부 지분보유)의 아파트에서 한국 고위 법관인 배우자, 자녀와 같이 생활도 했다. 실제 출국을 할 때 해당 아파트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공항리무진을 탔다.
2019년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자신을 거주자라고 주장한 바도 있다. 현재 비거주자는 소송비용을 공탁해야 한다. 소송에서 졌을 때 비용 회수(도피 등)가 어려울 수 있어서다. 김씨가 비거주자라면 담보제공은 따라야 할 의무였다. 그러나 김씨는 소송과정에서 "자신이 국내에 실질적인 생활근거를 가지고 있다"며 입증자료를 냈다. 자료에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저명하고 명망 있는 외과 전문의로서 2015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외과의원의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시 법원은 김씨를 거주자라고 인정했다. 현재 시점으론 국내에서 세금을 안 내려다 자기모순에 빠진 상황이 됐다.
국내기업 주식을 다량 보유하거나 고가의 부동산을 투자해서 보유한 것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한국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씨는 2018년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빗썸 지주사인 빗썸홀딩스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워 약 1216억원을 투자했고, 국내 법인인 BK성형홀딩스의 지분 100%를 간접 소유한 상태였다. 이후 BK성형홀딩스 명의로 빌딩을 지었다. 빌딩을 세웠던 토지는 본인이 취득한 것이었고, 토지는 본인이 지분 100%를 직접 소유한 BK메디컬그룹에 현물출자했다.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지분 100%를 소유한 법인으로 사실상 빌딩을 보유 중이며, 현재 해당 빌딩을 임차하고 있는 BK성형외과 의원의 원장은 김씨의 매제(妹弟)로 알려져 있다. 2019년말 기준, 김씨는 국내에 주식과 부동산 등 약 1800억원 상당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다.
쟁점② 왜 싱가포르 거주자라고 주장할까, 이유 있었다
김씨 측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배우자가 싱가포르에 체류한 전체 일수는 769일인 반면에 본인이 국내에 체류한 전체 일수는 352일에 지나지 않는데, 거주자로 본 국세청 과세는 터무니없다"고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이중 거주자로서 분쟁이 발생했을 땐, 한·싱가포르 조세조약에 따라 거주지국을 판단하게 된다. 두 국가의 조세조약을 보면, '항구적 주거→인적·경제적 관계→일상적 거소→국민' 순으로 따진다. 대법원은 항구적 주거를 '개인이 여행 또는 출장 등과 같은 단기 체류를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목적으로 계속 머물기 위한 주거 장소로서 언제든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주거'라고 명시한 바 있다(2018두60847 판결). 이를 고려할 때 서울 소재 아파트는 ①집에 해당하며 ②영속성이 있고 ③항상 이용할 수 있으며 ④처분권이 있으므로 김씨가 과세기간 동안 국내에 항구적 주거를 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국세청의 논리다.
판단 기준을 직업·사업장소 등 이해관계 중심지로 봐도, 한국에서 더 밀접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K성형외과 의원에서 VVIP를 진료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국내에 입국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발언은 김씨가 민사소송에서 자신을 거주자라고 주장하는 입증 근거로 쓰였다.
현재 싱가포르에선 주식양도소득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김씨가 보톡스 회사인 휴젤 주식을 처분하면서 발생한 소득은 522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돈을 벌었는데도 한국과 싱가포르 어느 곳에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소리다. '조세회피' 목적을 두고 세법상 이중국적 행세를 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짙다.
김씨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BTHMB홀딩스는 일명 '빗썸 코인'으로 불렸던 BXA코인(가상화폐) 발행했는데, 이때 김씨는 사례금 명목으로 이 코인을 편취했다. 2018년 코인을 팔아 벌어들인 돈은 무려 213억원이었다. 이 돈은 미국 은행 김씨의 명의의 개인계좌로 옮겨졌다. 국세청에선 코인을 받게 된 경위 등을 묻고 있지만, 김씨는 "싱가포르 거주자"라고 주장하며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세무대리업계에 따르면, 최근 김씨는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을 두고 '못 내겠다'며 조세심판원에 불복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는 ①김씨를 이중 거주자로 보면서, 또 다른 잣대인 이해관계 중심지는 한국에 있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고가의 부동산에 사들이고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를 인수하려는 등 투자 활동의 지향점이 한국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②'김씨 스스로 BXA코인을 발행한 BTHMB와의 싱가포르 소송,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진술 등에서 코인발행약정서에 따라 SGBK가 BXA코인을 받은 자로 지정한 당사자가 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세가 적법하다고 했다. 김씨 측은 "2023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의 양도소득' 과세규정을 적용해서 과세하려고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부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세청의 과세처분에 불복한 김씨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박왕 권혁씨, 구리왕 차용규씨, 완구왕 박종완씨 등 사건을 보더라도 '거주자냐, 비거주자냐'를 두고 다툰 사례는 적지 않다. 일부는 증거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과세권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세무대리업계에선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법인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어 과세근거가 충분한 만큼, 역외탈세 혐의 입증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세무사는 "김씨 본인이 2015년 3월부터 현재까지 성형외과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재직증명서 등을 제출하면서까지 국내에 실질적인 생활 근거를 주장하며 민사소송에서 거주자라고 판정을 받은 만큼, 김씨가 비거주자로서 과세를 피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