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부, 양육권·가족생활 자유·평등권 침해 주장
헌재,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 인정 판단
◆…사진=연합뉴스
#.인천에 사는 A씨는 딸을 홀로 키우는 미혼부다.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행정복지센터에 찾아갔던 그는 아이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알지 못할 경우에만 가정법원을 거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스러웠다. 당장 딸아이의 예방접종을 해야하는 A씨는 "어쩔 수 없이 아이 엄마 이름을 모르는 척하고 가정법원을 통해 출생신고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전했다.
위 사례처럼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어렵게 하는 현행 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관들은 지난 23일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를 제한한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57조 등에 대해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즉각 무효로 하면 법의 공백이 생길 수 있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의 형식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해당 조항들은 늦어도 2025년 5월 31일까지 개정돼야 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생모가 해야 하는 것'(제46조 2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혼인 중인 여성이 낳은 자녀는 일단 법률상 남편의 친생자로 보기 때문이다(민법 844조 1항). 생부(미혼부)가 혼외자에 대해 출생신고를 하려면 생모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미혼임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내야 한다. 만약 생모가 소재 불명이거나 의도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이에 지난 2021년 가족관계등록법으로 인해 곧바로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된 미혼부 4명이 모여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양육권·가족생활의 자유·평등권 등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아동들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기본권으로 갖는다면서 미혼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출생신고가 출생자의 인격 형성 및 부모와 가족 등의 보호 하에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현재는 또 "생모가 출생신고한다는 것은 혼인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한 행위를 하였다는 점을 자백하는 것이고, 법률상 남편이 해당 자녀의 출생 경위를 알고도 출생신고를 하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혼외 출생자에 대한 현행 출생신고제도는 실효적으로 출생등록될 권리를 보장할 수 없으므로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헌재는 혼외자 출생 신고를 어머니만 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아버지에 대한 평등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머니는 출산으로 인해 출생자와 혈연관계가 형성되지만, 생부는 출생자와의 혈연관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만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 의무를 부과한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기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