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국제관계학 제임스 혼캐슬(James Horncastle)교수는 프리고진이 정의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킨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벨라루스 루카센코의 중재를 받아들여 항복한 것이 정치적 행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루카센코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러시아 남부 군구 사령부인 로스토프나도누의 주요 군사시설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러던 그가 벨라루스로의 망명을 택하면서 그는 물론 부하들도 형사적 책임을 면제받았다.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 정규군과의 공개적 적대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자는 전쟁 시작 이래 수 없는 모욕적 비난과 언사를 퍼부으며 적대적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표면화될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됐다.
반란의 배경에는 러시아 군대와 바그너 그룹의 우크라이나 배치와 그들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시스템의 결과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표면화되지 않았던 이들 그룹 간 유대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분쟁 이전 이렇다 할 역할이 없어 정부와 공생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바그너 그룹은 비공식적 자격으로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려는 행태를 보였다. 즉 시리아나 수단처럼 러시아의 영향력이 미치기는 하지만 직접 개입은 하기 어려운 지역에 투입되었다.
2014년 크림반도 점령,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내전에 투입되면서 러시아 정규군이 투입되지 않았다는 외부적 명분을 제공했다. 다시 말해 러시아군과 바그너 그룹은 상호 협조하면서 러시아 정부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들 그룹 간 역학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개전 초기 정규군은 빠른 승리를 기대했지만, 초기부터 패전을 거듭하며 바그너 그룹이 투입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오합지졸에 가까운 러시아 정규군과는 반대로 바그너 그룹은 고도로 훈련된 군대로 전쟁 초기 승리로 기록된 시비에로네츠크 전투 등에도 상당히 공헌했다. 문제는 바그너 그룹의 손실이 엄청났다는 점이었다.
전술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에 따라 고갈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로부터 사면과 보상이라는 무기를 얻어내 감옥의 죄수는 물론 다른 나라 사람까지 용병으로 모집했다.
이로 인해 바그너 그룹과 정규군대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전에는 두 조직이 서로 다른 영역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에 투입되면서 둘 다 재래식 군대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있어 영향력이 겹치는 것은 그리 예외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이 러시아 정치 시스템의 특징이며 뒤에는 푸틴 대통령이 있다. 이들 간의 분쟁을 중재하고 충성 경쟁을 유도해 권력 기반을 구축, 강화하는 기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시스템은 푸틴이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한 평시에는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이번 전쟁에서도 초기에는 경쟁 파벌 간 협력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듯했지만, 공개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어쨌든 찻잔 속 태풍으로 일단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준군사조직의 불만의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1만2천 명의 군인들로 조직된 준군사조직을 가진 체첸의 람잔 카디로프 역시 러시아 정규군과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푸틴이 대국민 연설에서 반란을 일으킨 바그너 그룹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프리고진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의도적인 설계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반란의 성공 또는 실패에 따라 선택의 문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하루 천하로 끝난 반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겠지만 향후 어떤 갈등으로 다시 재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반란이 계속되었다면 푸틴에게 전쟁을 끝내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수 있다.
또 다른 방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러시아에 대해 불평불만을 표시하는 바그너 그룹이나 다른 준군사조직 등 희생양들에 전가함으로써 출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전쟁의 패배는 푸틴의 권력 지형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쉽게 권좌에서 내려오지는 않겠지만 2000년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대통령직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