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인플레, 기업이 주범" 꺼낸 IMF…설득력 잃은 '필립스곡선'

나라살림연구소, 'IMF 보고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3.5%로 올렸다. 이는 지난 22년간 최고치다. ECB의 급격한 금리인상 배경에는 유로지역 인플레이션이 기대만큼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실제 유로지역 인플레이션은 2022년 10월 10.6%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 추세이지만, 5월 현재 6.1%로 ECB의 목표치(2%대)에 한참 못 미친다.

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유럽 내에서는 인플레이션 주범이 누구인지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IMF의 보고서를 분석한 송종운 나라살림연구소 지방의정센터장은 "영국 전역에 997개의 매장을 보유한 냉동식품 체인 업체인 아이슬란드가 올해 10년 내 최고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과연 그 수익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연일 몰아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인플레이션은 노동비용(임금)을 주원인으로 보고 물가와 관계를 추적하는 '필립스 곡선'에 따라 파악됐다. 이러한 사고의 틀로 물가를 잡는다면, 극단적으로는 낮은 임금수준을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게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송 센터장은 "그러나 노동비용이 아니라 기업이윤이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며 "즉 필립스 곡선의 가정이 수정되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했다.

"영국과 유로존 물가 급등으로 인한 생활고는 기업의 가격정책 탓"

IMF는 2022년 1분기부터 2023년 1분기까지 해외 부문(수입물가)이 약 40% 정도로 유로존 물가상승을 기여했다고 봤다. 하지만 기업이윤은 2022년 이후 45%까지 인플레이션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했다. 또 '수입물가가 유로존 물가상승에 끼친 영향은 2022년 중반을 기점으로 축소되지만, 기업이윤은 이 시점부터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시기는 국제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던 시점이다. 바꿔 말해,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을 국내상품 가격에 반영시킬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IMF는 임금이 물가상승에 미친 영향은 치대 25% 정도로 크지 않다고 봤다. IMF가 국내적 요인만을 대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어떤 요인이 더 많이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결과다. 분석 시기는 제1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1년·제2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9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작년이다. IMF의 분석 결과엔 '1·2차 오일쇼크 당시 노동비용이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작년엔 노동비용이 아니라 기업이윤이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업이 물가상승의 주범이 된 것은 이들이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응하면서 수입물가 증가분보다 더 높은 비용을 상 가격에 반영시켜 소비자에게 전가할 결과이며, 그로 인해 기업이윤이 급증하고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게 IMF의 분석이다.

IMF는 2025년 ECB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 인플레를 달성하기 위해선 기업이 지금보다 더 적은 이윤 분배 몫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수준은 향후 예상되는 임금인상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송 센터장은 "향후 2년 동안 명목임금이 4.5%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기업이윤 몫은 1% 축소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실질임금의 회복을 고려하면 임금상승은 5.5%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기업이 추가로 이윤몫을 0.7% 가량 축소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5.5% 실질임금상승 조건에서 기업은 1.7% 이윤몫 축소를 수용해야 한단 것이다.

송 센터장은 "그러나 IMF의 기업이윤 몫의 축소 권고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유럽시민들은 금리인상과 물가인상의 충격에 계속해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