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범부(凡夫)의 일상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민망함을 안고 산다.
최근 1개월을 뒤돌아본다.
올 연말 정년퇴직한다는 시골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20여 년 전 서울에서 날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온전히 기억을 해내기는 어려웠다. 세월이 빠르다며 앞으로 뭘 할지 고민이라며 던진 한마디, "너는 서울에서 자리 잡고 있으니 걱정 없잖아?" 그의 말대로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나는 걱정이 없는 사람인가.
1월과 7월에는 개업식 초대장을 많이 보게 된다. 오래된 인연도 있지만 속 깊고 배려심 많은 한 후배의 개업식에 들렀다. 조금 늦은 시간임에도 낯익은 지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다. 먼저 개업한 이들은 사무실 운영 등 현실적 고민을 농반진반 전해준다. 업계 상황은 갈수록 포화상태인 데다 곳곳에서 염가 수임의 출혈 경쟁이 치열하다. 1세대 세무사 중에는 가업승계처럼 자식에게 업을 이어가는 사람이 늘어 간다. 고령의 세무사에게 직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은퇴를 만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정이 다 다르긴 하겠지만,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니, 선배님은 잘하고 계시면서 왜 그러세요 ."한다. 괜한 엄살처럼 보였던 것일까.
12년 전 처음 세무법인을 세우면서 세무사 3명을 모집했다. 당시 창립멤버로 참여했던 세무사 중 한 사람이 지난해 6여 년 만에 다시 합류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돌아온 그를 보면 든든하다. 하루는 "예전보다는 펌이 상당히 시스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일하기도 편해진 것 같습니다."라며 웃는다. 고마운 말임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복잡해진다. 언제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속으로 되뇌는 횟수가 늘어만 가고 있는데.
양평에 가면 이 작가(이재효 갤러리)가 있다. 첫 방문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마음이 동하여 다시 찾았다. 산다는 것이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라면 작가의 작품을 통한 시간 여행이야말로 특별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연배에 유사한 환경(시골)에서 태어나 보고 듣고 자란 세대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더욱 그랬다.
전공은 조소과다. 조소(彫塑)가 조각(彫刻)과 소조(塑造)의 합성어로, 조각이 재료를 깎아 내는 것이라면 소조는 반대로 덧붙인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소조다. 작품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와 낙엽, 못, 돌 등이다. 깎고 다듬고 덧붙여서 생명을 불어넣는다. 언제 보아도 어디에 놓여있어도 맵자해 보일 것 같은 작품에 스며든다.
신시(申時) 무렵이었다. 작가는 분주했다. 헐거운 옷차림에 비와 땀에 젖어있었다. 전시관 사이를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지붕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작업실 도우미도 보였다. 모였다 흩어졌다 이리저리 오가며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평평하지 않은 작은 나무 테이블에 삐딱한 의자가 놓여있었지만, 탁 트인 시야와 양평의 운치에 금세 빠져들었다. 석양을 즐기기 딱 좋은 곳이라며 자리를 권한다.
'창작활동에 늘 바쁘시겠다'라고 하자 '작가는 적당히 게을러야 한다'라고 말한다. '밥하는 게 귀찮아야 편리한 밥통 만들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라며 웃는다. 안정적으로 사는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가훈이 뭐냐고 묻길래 '열심히 해도 안 되면 말고'라고 했더니 난감해하더란다. 후회할 짓을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자는 주의다. 옳다고 맞는다고 생각한 일이 있으면 멈추지 않는 작가다. 아방가르드와 이단아, 강(强)한 것이 아니라 강인한(强靭, 강함에 머물지 않고 질기고 부드럽되 유연한) 작가를 오마주한다.
해시(亥時)다. 어둠을 지운 것은 조명등이 아니라 주변의 은빛 조형물과 작품의 온기였다. 고즈넉한 양평의 밤에 가랑비가 운율을 더한다. 몸을 사리기 적당한 처마 밑에서 작가의 뒷모습을 훔쳐본다. 그의 명성 뒤편에 아린 듯한 기운이 맴돈다. 매일 반복되는 –고르고 나르고 자르고 깎고 매고 엮고 박고 떼고 붙이고 만드는 한 예술가로부터 시시포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는….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