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공정위가 배포한 3페이지 분량의 자료에는 놀라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 중부지방세무사회가 소속 회원들에게 세무대리 관련 요금을 적시한 '세무대리 보수표'를 배포해 실정법을(공정거래법) 위반, 1억9000만원의 과징금 납부를 명령했다는 것이었다.
세무사 업계에 충격파를 던져 준 이 사건은 '후유증'도 상당했다.
이 사건이 동반해 온 후유증 중 가장 큰 것은 한창 구체화 과정에 접어 들었던 세무대리 보수기준표 재정립 논의가 일거에 수면 아래로 끌어 내려졌다는 것이다.
한창 활발하게 진행되던 세무대리 보수기준표 재도입 문제는 현재 꼬리를 감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부각, 구체적인 움직임으로까지 연결될 여지가 많다. 그만큼 세무사 업계의 관심이 높은 현안 중 하나이기 때문. 좀 더 근본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현안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세무대리 보수기준표…중부세무사회가 자체적으로 제작 소속 회원들에게 배포했던 세무대리 보수기준표. 중부세무사회는 지난 3월 실정법상 불법으로 규정된 보수기준표를 제작 배포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억9000만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았다.
□ 세무대리 보수기준표, 폐지 전후(前後)= 과거 세무사들은 세무사법 규정에 의거해 제작된 자체적인 세무대리 보수기준표를 정해놓고 있었다.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가격경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시장상황이 돌변한 것은 지난 1999년. 정부가 전반적인 시장경쟁 촉진을 위해 카르텔 일괄정리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경쟁제한적 소지가 다분한 보수기준표를 일종의 담합으로 규정, 폐지토록 했다.
이후 세무사 업계는 자유로운 가격경쟁 체제로 전환됐다. 특히 세무사들의 주요 수입원인 장부기장 및 세무조정 수수료는 세무사 개인의 결정에 따라 가격을 책정해 서비스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격경쟁이 아닌 서비스의 '질' 경쟁으로 이어지는 발전은 더딘 반면 장부기장 및 세무조정 수수료를 대폭 낮추는 이른바 '덤핑' 현상이 출현하면서 업계는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세무대리 보수기준표의 재정립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덤핑 현상, 직접적인 이유는?= 이 같은 상황에까지 치달은 원인에 대해 많은 수의 세무사들은 해마다 신규 세무대리 인력이 수 백 명씩 쏟아져 나오는 '공급과잉 현상'을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다.
현재 정부는 매년 세무사 600여명, 공인회계사 1000여명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국세청 등 유관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자들도 현직 근무시 세무사 자격증을 습득, 퇴직과 함께 세무대리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1996년 3029명 정도였던 세무사 숫자는 2005년 6700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이후에도 매년 400-500명씩 꾸준히 늘어왔다.
올해 4월 현재 8368명의 세무사가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세무사회는 이 추세대로 간다면 2, 3년 뒤에는 회원 숫자가 1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공급과잉 현상이 결과적으로 기존 시장참여자들과 신규 시장참여자들이 뒤엉켜 척박한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해야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다 보니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쟁도구인 가격 디스카운트를 통한 출혈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세무사 시장의 정체된 수익원 개발 노력도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대다수의 세무사들이 전통적인 장부기장 및 세무조정에 의존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기장시장은 뚜렷한 신장은커녕 오히려 협소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세무사는 "변해 가는 시장상황에 맞게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좀 더 고도화되고 세련된 업무영역을 개발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며 "대다수 세무사 사무소가 장부기장에 의존, 현실에 너무 안주하고 있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 세무대리 보수기준표 '부활' 움직임= 세무대리 보수기준표 부활 움직임은 가격덤핑에 따른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인해 어지러워진 업계의 질서를 바로잡자는 것에서부터 출발점을 찍었다.
말 그대로 '교통정리'의 수단으로 보수기준표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 이전 처럼 적정한 보수기준을 제정해 세무사들이 이를 준수토록 의무화 할 경우 자연스럽게 세무대리 서비스질을 저하시키는 가격덤핑 현상이 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세무사는 "현재 세무사 사무소에서 받고 있는 장부기장 수수료 등은 지난 수 년간의 물가상승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정체되어 온 것은 물론 보수 자율화로 가격덤핑 경쟁에 따라 오히려 내려간 측면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사는 "세무대리 보수의 자율화로 인해 세무사들보다 오히려 납세자들이 자신이 지불하는 세무대리비용이 적정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며 "세무대리 보수표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업계 질서 확립을 위해 보수기준표를 다시 부활시킨다면 물가상승 등을 제대로 반영한 적정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기준표 제정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일면 커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반대'목소리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일부 세무사들 사이에서는 세무대리 보수기준표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 자체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시대의 정신'이 된 자유로운 경쟁체제는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세무대리 보수기준표를 만들어 경쟁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에 따라 가격덤핑 등은 현재와 같이 업계의 자체적인 정화노력을 지속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새로운 수익원 개발 노력을 통한 세무사 스스로의 '가치상승'을 꾀하는 노력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의 핵심이다.
한 세무사는 "장부기장 등은 전적으로 세무사들만이 할 수 있는 업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우리 세무사들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업무를 개발하고 '성역화'하는 노력에 힘을 쓰는 것이 세무대리 보수기준표를 부활시키는 일보다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