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출 거부 외국계 기업에 대한 국세청 과태료 부과 건수 98%, 부과 금액 96% 급감
◆…(송언석 의원실 제공)
#. 연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플랫폼기업 A사. 그러나 A사는 국내 서비스 판매수입 대부분을 해외 본사로 송금한 후 로열티 비용으로 계상하는 방식으로 영업이익을 축소해 전체 매출액의 1%도 채 되지 않는 법인세를 납부했다.
이에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A사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제공자는 해외 본사이고, 한국지사는 중간유통업자로서 서비스를 재판매한 것에 불과하므로 유통마진 수준의 이익만을 남길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라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해외 본사와의 저작권·사용권에 관한 계약서 및 내부 의사결정 구조 등 자료제출을 요구했지만, A사는 자료가 국내에 없다며 수개월 간 자료제출을 미루며 거부했다. 결국 국세청이 수십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자, A사는 국내 유명 법무법인을 선임해 법원에 이의신청·항의했고 최종적으로 2000만원의 과태료만 납부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서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꼼수를 통해 법인세는 지나치게 적게 납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세청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 외국계 기업에 부과한 과태료 건수가 2019년 116건에서 2023년 2건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솜방망이 규제 탓에 국세청의 자료제출 요구에도 이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과세자료 회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직무집행 거부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현황'에 따르면 국세청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 외국계 기업에 부과한 과태료가 지난해 2건, 총 6600만원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116건에 대해 총 21억800만원을 부과한 것과 비교하면 건수로는 98%, 금액으로는 96% 급감했다.
◆ 2021년 법원 판결 이후 과태료 부과 건수·금액 급감
현행 국세기본법 제88조에 따르면 납세자가 국세청의 질문·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과세자료의 제출을 기피하는 경우, 최소 500만원부터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에 국세청은 외국계 기업의 자료제출 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각각의 자료 제출 불응 건에 과태료를 부과해왔다.
그러나 2021년 법원이 "하나의 세무조사에는 1건의 과태료 부과만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과태료 부과 건수와 금액이 급감했다. 국내 매출이 수조원으로 추정되는 외국계 기업이 자료제출을 수십차례 거부해도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는 최대 5000만원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 조세불복 단계에서 유리한 자료만 제출해 부과된 세금 취소 받기도
더욱이 과세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국세청은 과세처분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추계과세를 할 수밖에 없는데, 납세자는 과세처분에 불복한 후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면 과세처분이 취소될 확률도 높아진다.
이 같은 방법을 이용하는 일부 외국계 기업은 과세자료가 해외 본사에 있다는 핑계를 대며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불복과정에서 유리한 자료만 증거로 제출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외국인에 대한 국세청의 조세 행정소송 패소율은 지난해 기준 19%로, 전체 평균인 9%의 2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대 대형 로펌이 담당한 외국인 조세행정소송의 패소율은 지난해 기준 79.3%에 육박했다.
일례로 글로벌 IT기업의 한국 법인인 B사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수십 번에 달하는 조사법인 방문과 해외 화상회의 개최를 통한 협조 요청 등 국세청의 적극적인 자료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세무조사 진행을 방해했다.
이처럼 자료제출을 거부해 세무조사 시 정상적인 세액을 산출하기 어렵게 만든 후에, 조세불복 단계에서 유리한 자료만 선택적으로 제출해 세무조사로 부과된 세금을 취소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 특히 거래 쌍방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계약서와 같은 자료도 해외 모법인에만 있다는 핑계로 시간을 지연하고 조사를 방해하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이 같은 방식으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대부분을 본사 또는 조세부담이 적은 특정 국가의 계열사로 이전한 뒤, 실제 수입이 발생한 국가에서의 이익을 축소해 과도하게 적은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다.
◆ 주요 선진국은 세무조사 자료제출 거부 시 고액의 벌금·징역형 부과해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세무조사 자료제출 거부에 대해 고액의 벌금이나 징역형 등을 부과하는 등 엄정히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세무조사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이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세무시효가 중단되며, 조사단계에서 제출하지 않은 과세자료를 불복단계에서 증거로 제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영국은 자료제출 통지에 불응하면 과태료가 순차적으로 높아지는 동시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독일의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비협조 정도에 따라 제재의 수준이 계속 증가하는 비례적 벌칙 적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송언석 의원은 세무공무원의 적법한 직무집행을 거부·기피하거나 제출명령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자에게 '재제출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국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송 의원은 "본사가 해외에 있는 일부 기업들이 과세자료 미제출 등의 방법으로 세무조사를 방해하고 조세소송 과정에서 유리한 자료만 제출해 과세처분을 취소 받는 것은 조세 정의를 훼손하고 국부를 유출하는 행위"라며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규정과 비교할 때 현행 국세기본법의 과태료 수준은 불충분한 제재"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