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론으로 대형은행에 은행부담금(Bank levy, 일명 은행세)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G20회의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은행부담금에 대한 20개국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면서 찬반이 확실하게 갈리는 양상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은 은행부담금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캐나다와 호주 등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
지난 6월 초 부산에서 열린 G20재무장관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11월에 열리는 서울 G20정상회의에서도 은행부담금에 대한 합의는 어려울 것 같다"고 8일 밝혔다.
은행부담금에 대한 20개국의 합의가 힘든 이유는 각국이 '은행부담금'을 도입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
은행부담금 카드를 가장 먼저 이슈화 시킨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으로 대형은행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로 은행부담금을 꺼내들었다. 500억 달러 이상의 자산규모를 가진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채에 대해 0.15%의 부담금을 부과하겠다는 방안이었다.
미국의 속내는 금융위기를 일으킨 대형은행을 공적자금으로 보전했기 때문에 은행부담금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목적.
그러나 영국이나 프랑스는 미국과는 달리 은행부담금을 통해 은행의 고위험 투자를 제한해 미래에 발생할 금융위기를 막고, 재정 확보를 꾀하고 있다.
반면, 독일이나 스웨덴은 특별목적의 기금을 조성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은행부담금에 반대하는 캐나다 등은 때 아닌 금융거래세를 주장하고 나섰다.
은행부담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다면, 금융거래세는 오래 전부터 논의돼 왔던 이슈로 사실상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러나 금융거래세는 자연스럽게 은행부담금 논의에 '탑승'했다.
토빈세 등의 금융거래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쏟아부은 재정을 다시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고, 투기자본을 규제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브라질은 지난해 말 금융거래세를 도입해 평가절상됐던 브라질 헤알화를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책임론으로 등장했던 은행부담금이 넓게는 금융거래세 도입 논란으로 이어져 단기투기자금을 절제하는 장치로 논의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은행부담금을 사실상 단기적인 투기자금의 유출입을 막기 위한 장치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은행부담금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은행부담금 도입에 필요성이 상당하다"고 말했고, 재정부는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규제는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은행부담금의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상 은행부담금은 대형은행을 키워 금융산업의 허브를 육성하겠다던 정부의 정책과는 상반된다. G20 의장국으로서 은행부담금에 대한 국제적 포지션을 강화하려는 야심도 엿보인다.
유럽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손쉬운 세수확보 수단을 마련하려는 목표를 숨기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로 재정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은행세를 도입하면 1조6000억원 정도 세수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웬만한 국세 세목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약한 수준이다.
좀 더 국제적인 합의사항을 지켜봐야겠지만 우리가 은행세에 대해 굳이 앞서나갈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특히 하나의 세금을 신설하는 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수반돼야 하는 신중한 문제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