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한 TV에서는 국세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나사케의 여인 국세국 사찰관(일본원어로 쓰면 ナサケの女・国税局査察官)'이 그것이다.
일본 목요일 가을드라마로서 10월 21일 첫 시청률 17.6%로 그 즈음 일본 다른 방송국 드라마와 비교하여 1위를 차지할 만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국세청 여성세무공무원이 주인공으로 매회마다 탈세범을 통쾌하게 잡아내고 있다. 이 여성은 도쿄 국세국(東京国稅局) 사찰부(査察部) 정보부문(情報部門) 사찰 제18부문 소속이다.
'나사케(ナサケ)'는 위 주인공의 소속부서인 정보(情報)부문의 정(情)의 일본식 훈독이다.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이 여성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지방국세청의 조사4국(법인 및 개인 세무조사 및 범칙조사 담당) 소속이라 할 수 있다.
여성세무공무원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이번 만은 아니다. 1987년 영화 '마루사의 여인'(일본원어로 쓰면 マルサの女)이 흥행에 성공한 후, 1988년 속편 '마루사의 여인 2'가 나온 바 있다. 마루사가 도쿄 국세국 사찰부를 가리키는 은어였던 것이 영화 및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진 용어가 되었다.
'나사케의 여인'도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아 제목형태의 기본틀을 따라하고 있다. 나사케의 여인 제1회에서 지방세무서에 근무하던 주인공이 그 능력을 인정받아 도쿄 국세국 사찰부로 발령을 받을 때 직전 상관이 여주인공을 가리키며 '마루사의 여인'이라고 하는데, 초기 영화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1987년 '마루사의 여인'의 후속편 및 계속되는 여러 아류작을 볼 때 일본 국민이 세무공무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에 대해 관심이 꽤 높음을 짐작하게 한다. 다양한 직업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본 드라마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그러하다.
이러한 영화 및 드라마의 영향은 일반 국민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국세청 직원 모집을 위한 자료(2008년)를 보면 현직 세무공무원도 대학때 '마루사의 여인'이라는 영화에 등장한 조세포탈범을 잡기 위한 세무공무원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정의로운 세무공무원이 되겠다 결심했다 정도는 아니지만 실제 세무공무원이 된 사람에게도 꽤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일본 영화 및 드라마 소개부터 되어버렸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과 같이 세무공무원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것이 있을까?
아쉽게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서울시 체납담당을 하는 '38세금기동대'의 경우는 비교적 자주 언론에서 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액상습체납자를 상대로 한 지방세 세무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논픽션으로 알 수 있다. 국세청의 경우는 어떠한가?
국세청은 1966년 독립된 하나의 외청으로 개청한 이후 굵직굵직한 기업관련 사건마다 검찰청, 경찰청과 함께 해당 기업의 불법적인 일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국세청은 신문기사의 경우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 때로는 정치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관으로 국민들에게 힘있는 기관으로 각인되어 있다.
실제 장관급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국세청장도 받는 것도 그러한 맥락의 것이라 할 수 있다. 뉴스를 장식하는 기업의 비자금문제, 이에 연달아 터져 나오는 차명계좌, 그리고 탈세문제. 이들 문제가 기업주와 그 가족으로 번져가면 증여세 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국세청의 세무조사 이야기는 꼭 나오게 되어 있다.
사회적 관심이나 그 역할을 볼 때 국세청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적인 드라마 소재일 것 같은데 픽션보다는 논픽션, 만들어낸 이야기보다는 실제 이야기가 더 흥미로운지 작품화는 잘 안되는 듯 하다.
얼마 전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님의 세무공무원에 대한 이야기가 한 신문사의 드라마소재 공모에서 채택된 바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실제 작품으로 출시는 되지 않았다.
국세청 홍보용이 아닌 이상 재미나 작품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가 뛰어들 텐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왜 안 될까?
세금문제는 국민 누구나의 문제일 수 있고 세금관련 사건은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꺼리임에는 틀림없다. 한때 국세청에서 실시했던 '올해의 국세인' '이달의 국세인'으로 등장했던 세무공무원들도 드라마 주인공 모델로서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국세청 명예홍보위원을 걸친 유명연예인들이 여럿 되는데 드라마 주인공을 맡겨도 될 지명도와 연기력을 갖고 있다. 국세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나올 시기가 되긴 되었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대물'의 경우 검찰의 속내, 그리고 향후 대선에도 영향을 줄지 모른다고 이야기되고 있는 여성대통령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힘 있는 기관의 이야기라고 해서 드라마 소재로 금기시하는 시기는 확실히 벗어나 있다.
그런데 정작 국세청은 자신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대해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을까?
담당 세무공무원은 정의감에 불타있는데 국세청 자신은 그러한 정의로운 행동을 막는 거대한 조직으로 그려지는 경우 일반국민들이 '사실과 다르게 묘사했네' 할 정도로 국세청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형사를 주인공으로 해서 흥행성공을 하였던 '투캅스'(1993년, 강우석 감독, 안성기 주연) 상영시 여기서 그려진 부패한 경찰공무원의 이야기로 인해 경찰청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며 강하게 반발을 한 적이 있다. 국세청이 이런 경찰청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지는 않을까?
정감이 가는 강력계 비리형사가 나온 '공공의 적'(2001년, 강우석 감독, 설경구, 이성재 주연)의 경우에는 유능한 펀드매니저이지만 살인자인 악역이 말 그대로 '공공의 적'에 맞추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힘들게 일하는 경찰공무원의 애환과 노력이 돋보였다.
만약 영화 속에서 국세청 세무공무원이 주인공이 되어 업무는 어렵지만 정의감으로 일을 하고 이에 반해 힘은 있지만 교묘히 탈세를 하는 납세자가 악역으로 그려진다면, 국세청으로선 더할 나위없이 국세청 업무수행의 홍보도 되고 사기도 진작되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작품을 우리나라 현재 어려운 제작여건 속에서 누가 만들어줄까? 흥행이 담보될까?
그런데 이렇듯 작품을 만들어 봄직한 일들이 계속 국세청의 업무범위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업관련 비자금 사건, 전정부나 현정부 정부주요 관계자 또는 그 관계자의 친인척의 연루의혹이 제기되는 탈세나 세무조사 무마 사건 등이다.
국세청이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소신있게 원칙대로 처리해 나가는지에 따라 앞으로 국세청과 관련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 국세청 자체가 악의 한 축이 될 수도, 악에 대항해 탈세범을 잡아내는 정의로운 조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선악 중 한 단면만으로 그려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과거 국세청, 특히 고위 세무공무원이 자체 인사 문제나 정치권과 관련해서 악의 한 모습을 보인 사건들이 꽤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적극적으로 국세청이 계속 노력하지 않는다면 현실세계에서 보여준 국세청의 부정적 모습들은 일반 국민이나 국세청에 몸담고 있거나 앞으로 일할 사람들에게 '픽션'을 통해 더욱 선명하고 뿌리 깊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10월 25일부터 11월 30까지 '2010년 국세행정납세자 신뢰도 평가'가 실시된다.
실시결과를 분석할 때 과거보다는 좀더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신뢰도 회복을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 별로 적절한 '후속조치'를 계속 해나가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2만여명의 국세청 세무공무원은 대부분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추고 있고 하루 하루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 이러한 세무공무원이 다른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애환 속에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에 부딪힐 때면 소신껏 과세할 것을 과세 해나가는 모습을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길 기대한다.
[약력]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국세예규심사위원회 위원, 행정자치부 지방세지출예산제도 자문위원회 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서울시 지방세심의위원회 위원, 동경대 객원연구원,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세무학과 부교수(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