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세무검증제도'를 둘러싼 논란 말이다.
재정부가 세무검증제 골격을 발표하면서, 내년 도입 의지를 밝힐 때만 해도 상당히 자신만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정부가 세무검증제 골격을 세상에 공개한 것은 지난 8월말이었다. 3개월이 조금 넘게 지난 듯 싶다. 무수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재정부는 꿋꿋했다.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가며 만들어 냈을 테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지금 재정부 앞에 놓인 세무검증제 도입 '성적표'는 보기 민망할 정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세무검증제 도입 방안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계류하기로 결정했다. 말만 계류일 뿐,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 풍파(風波), 집단 이기주의(利己主義)가 투명사회를 지향하는 제도의 앞길을 막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여곡절만 겪을 뿐, 여전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미술품 양도세 과세제도처럼 정치와 이기주의에 희생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순전히 제도를 입안한 재정부의 생각일 뿐이다. 논리적 결함이 너무도 많은 제도인 것으로 판명된, 세무검증제는 분명 다른 케이스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논의과정에서 드러난 세무검증제의 논리적 결함은 아무런 제재 없이 도입됐을 경우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정 사업자에 대한 차별적 조세규제라는 이념적 문제도 문제지만 부실검증에 대한 제재방법, 검증 실효성 확보 문제 등 전 분야에서 무수한 문제점이 노출됐다.
납세자가 부담하는 세무검증비용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덜어낸다는 재정부의 아이디어도 세무대리 시장의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탁상형(型)' 아이디어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아무리 목표가 좋아도 뒷받침하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면 나쁜 정책이다"라고 평가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재정부가 어떤 전제를 깔고 세무검증제도를 설계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전제는 좋았을지언정, 이를 뒷받침하는 수단(세무검증제)은 '엉성' 그 자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세무검증제는 '규제' 성격을 가진 조세제도다.
그렇다면 더욱 치밀하고 신중한 설계과정이 필요했다.
알아주는 수재(秀才)들이 모여 있다는 '두뇌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재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설계는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제도 하나가 국회 논의과정에서 탈락한 것에 불과하다, 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의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만 놓고 보면 두 눈 질끈 감고 넘길 일이 아니다.
조세제도는 국민의 재산권과 직결되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다.
'대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일단 도입하고 시행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점은 보완하자, 는 식의 사고방식도 통용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제도를 설계하면서 재정부 실무진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의(大義)'만 뚜렷하다면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제도 도입이 무산된 현 시점에서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혹여 '외풍'을 차단하지 못해 애꿎은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세무검증제 도입 무산을 계기로 재정부가 다시 한번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
맹목적인 권한 행사에 치우쳐, 정작 제도의 지향점이 되어야 할 '국민'을 배제한 것은 아닌지, 사회의 '작동원리'와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탁상에 빙 둘러앉아 머리만 맞댄 것 아닌지 되돌아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아마도, 세무검증제 도입 무산은 아주 좋은 '반추(反芻)'의 계기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