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상후보자 649명 공개…대기업 이름 찾기 힘든 이유는?
면밀한 검증하면 탈락될 기준 이하업체 '수두룩'
| 최근 '납세자의 날'에 성실납세자로 추대돼 훈·포장 또는 표창을 받은 회사들이 약속된 세무조사 유예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세무조사를 받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세청은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 선진납세문화 정착과 국가재정에 크게 기여하는 등 납세자로서 타의 모범이 됐다'는 이유로 포상을 받은 기업들에 대해선 상훈의 품격에 따라 2∼3년의 세무조사 유예를 약속했던 터. 그러나 지난 2010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던 현대중공업에 대해 국세청은 포상이후 서너 달만에 전격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2009년 국무총리표창을 받은 한국선재(주)에 대해선 이듬해 조사를 벌여 자기자본의 4.47%에 달하는 23억원을 추징했다. 이 외에도 현재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某그룹 계열사를 포함 수많은 회사에 대해 국세청은 포상이후 3년이라는 조사유예 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세무조사에 나섰다. 성실납세자를 선정해 포상이 이뤄지도록 추천하는 국세청 내부에서조차 "납세자의 날 포상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조사유예기간 동안 조사를 받지 않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할 정도. 이같은 현상을 반영하듯 국세청은 최근 "성실납세자로 선정돼 포상을 받더라도 매출액 5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대해선 세무조사 유예혜택을 폐지하겠다"며 '성실납세자 관리규정'의 개정의지를 행정 예고했다. 국세청이 성실납세자로 추대하면서 한껏 고무시켰던 회사들에 대해 세무조사 유예혜택을 줄여 가는 이유는 뭘까. 포상을 받은 이후 기업들이 '세무조사유예'에 지나치게 기댄 나머지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애초 성실납세자 선정과정에 문제가 생겼던 것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국세청은 "납세자가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는 등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선진납세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오는 3월 3일 제45회 납세자의 날을 맞아 모범납세자에 대한 포상을 실시할 것"이라며 모범납세후보자 64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모범납세자후보자 공개와 관련해 국세청은 "후보자 명단을 국세청 홈페이지에 1주일 이상 공개해 국민의견을 수렴, 개진된 의견을 공적심사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정부포상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조세일보는 국세청이 공개한 649명의 모범납세자후보자 면면을 분석하는데 취재력을 집중, 어떤 기업들이 후보자대상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들이 과연 모범납세자로서 타의 모범이 돼 선진납세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검증해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
■ 대기업 이름 찾기 힘들다…왜?
올해 국세청이 공개한 649명의 모범납세자후보자 명단에서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기업의 이름을 찾아보기가 극히 힘들다는 것.
지난 2009년을 기준으로 매출액 1000억원이 넘는 기업가운데 후보자 명단에 끼어있는 회사는 전체 후보의 7%에 불과한 46개 기업뿐이었으며, 매출 5000억원이 넘었던 회사도 472개 사나 됐지만 이 가운데 모범납세자후보는 단 11곳에 불과했다.
2009년 매출액 1조원이 넘은 266개 기업가운데 모범납세자후보에 오른 회사는 21조1904억원의 매출을 올린 SK네트웍스㈜와 ▲한라건설㈜ 1조6159억원 ▲계룡건설산업㈜ 1조2088억원 등 3개사가 전부.
그 뒤를 이어 ▲㈜삼탄 8217억원 ▲삼부토건㈜ 8124억원 ▲㈜공항석유상사 6690억원 ▲세방전지㈜ 6271억원 ▲희성촉매㈜ 5218억원 ▲㈜현대홈쇼핑 5156억원 ▲포스코파워㈜ 5086억원 ▲인천도시가스㈜ 5007억원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국세청 사람들이 "요즘 대기업들은 회계시스템은 물론 우수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세무조사를 나가도 추징할 기회를 찾기 힘들다. 많이 깨끗해서 추징을 하더라도 세법해석의 차이부분이 많고, 이 때문에 마찰이 많다"고 말해왔던 것에 비춰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
모범납세자 후보명단에서 대기업 이름을 찾기 힘든 것은 대기업들은 아직도 자산의 해외도피 등 탈세요인이 많은 것으로 국세청이 보고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범납세자로 선정이 돼 포상을 받더라도 특별한 메리트가 없어서 기업스스로 포상을 고사하기 때문일까.
이같은 현상에 대해 국세청은 "올 납세자의 날에는 중소기업, 특히 지방에서 장기간 지역사회발전에 애써온 지방기업들을 중심으로 포상을 할 계획"이라며 "이같은 계획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업사람들은 "세무조사 유예혜택이 사라진 마당에 포상을 받으면 무슨 특별한 메리트가 있느냐"고 말하고 있다.
■ 면밀한 검증하면 탈락될 기준 이하업체 '수두룩'
649명의 모범납세자후보자 명단에는 지속적으로 사회공헌을 하면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기업들이 꽤 들어있다.
이들이 성실한 납세로 국가재정에 기여하고 건전한 납세풍토를 조성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경로잔치 후원이나 천사운동 전개 등 사회적인 소외계층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후원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 대구지역에서 녹색분야 '2010년 스타기업'으로 꼽힌 회사를 비롯해 한국제품의 우수성을 수출증대로 입증, 국가경쟁력을 강화한 회사들의 이름도 눈에 띄고 있다.
이와 함께 大-중소기업 상생이 강조되는 시대흐름에 맞게 대기업들이 대거 빠진 빈자리를 납품 등으로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메꾼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미 이런 저런 이유로 훈장 등 포상이 이뤄진 기업들이 다수 들어있는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이들 회사들이 '성실납세'에도 물론 기여했겠지만, 이미 무역의 날이나 상공의 날 등에서 각종 포상으로 격려가 됐다면 이왕이면 더 많은 회사들이 고른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더 '공정'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
특히 후보명단에 오른 회사 가운데는 최근 정부기관에 의해 불법혐의가 드러나 수사가 의뢰된 회사들도 포함돼 있으며, 먹다 남은 음식물을 다시 팔다가 적발된 업체는 물론 최근 이런 저런 불법행위로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된 업체들이 다수 끼여있기도 했다.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만으로도 쉽게 확인이 될 만큼 사회적 지탄을 받는 업체들이 어쩌다가 모범납세자 후보명단에 올랐으며, 대체 모범납세자 선발기준이 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이번 모범납세자후보자에 포함된 대상은 본인추천을 비롯해 다른 기관의 추천이나 일선세무서에서 추천된 모든 대상들이 포함, 아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후보들"라며 "앞으로 외부기관 조회 등을 통한 검증절차를 남겨놓고 있어, 이 과정에서 면밀한 검증을 벌여 최종 포상대상자를 선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