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개최된 국회 정보위원회의 조찬 간담회는 최근 문제가 된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보고를 듣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간담회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20분 만에 아무 소득없이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국가정보원 측이 시종일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며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보위원회 소속인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언성을 높이면서 무성의한 국정원을 질타했다. 그렇지만 국정원 김숙 1차장, 민병환 2차장, 김남수 3차장은 "국익을 위해 어느 것도 말할 수 없다"는 얘기만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이번 사건은 외국 특사단의 짐을 몰래 뒤지다가 덜미가 잡힌 사건이다. 관련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고위 인사들이 강조해온 국격도 순식간에 추락했다.
당연히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진상을 밝히고, 그 결과에 따라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먼나라의 얘기다. 국익을 망친 이들만이 나서 국익을 명분으로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곳은 청와대다. 사건발생 직후 정치권 안팎에선 '국정원장 경질론'이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원세훈 국정원장을 바꾸면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사건의 주범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청와대의 반응에 김황식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구이기 때문에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 뒤부터 진상 규명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더욱 엷어졌다.
권력 상층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사건의 진실은 안개 속에서 잠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정부는 진실 공개에 따른 후폭풍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익으로 교묘히 포장된 정권의 보신주의를 당장 걷어내지 않을 경우 우리사회는 언젠가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에 처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살처분한 곳에서 나는 심한 악취가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음을 일깨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