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는 'CEO리스크'인 것 같습니다."
최근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시중은행 임원은 다소 엉뚱한 답을 전해왔다.
그는 최고경영자(CEO)들간 '권력다툼'에 대한 안팎의 비난 여론을 감당해야 했던 최근이 수십년 은행원 생활 가운데 가장 힘들었다는 푸념도 늘어놨다.
얼마 전까지 국내 금융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사태'는 각 금융지주사 경영진이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 되면서 표면적으로는 해소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이후 새로 선임되거나 연임된 금융권 CEO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각 금융지주사들이 CEO리스크에서 완벽히 벗어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외국계를 제외한 국내 금융지주사는 KB·우리·신한·하나·산은금융지주 등 총 5개사. 이들 금융지주사 회장 가운데 무려 4명이 이명박 대통령과 학연·지연 등 '정치적 혈연' 관계로 엮여 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로 엮여 있으며, 최근 논란 속에 선임된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겸 산업은행장)은 이른바 '왕의 남자'로 불릴 정도이니 더 할 말이 없다.
특히 '장관급' 인사인 강만수 회장이 '차관급' 자리인 산은지주 회장에 취임한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비판을 넘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강 회장은 행시 8회 출신으로 금융감독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23회)보다 무려 15기수 앞선다. 행시 출신들의 경우 무엇보다 기수 및 서열을 중시하고 비(非)고시 출신들에게는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산은지주 회장의 연봉인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각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정치적 배경'이 정권말 CEO리스크의 뇌관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 2월까지다.
정권후반 '레임덕'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임기는 내년 상반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강만수 회장과 이팔성 회장의 임기는 2014년까지며, 어윤대 회장은 2013년이다. 반면 김승유 회장의 경우 매년 재신임을 받기로 한 만큼 내년초 임기가 만료된다.
외환은행 인수를 매듭짓고자 연임한 김승유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3인은 당장 내년 하반기부터 크고 작은 정치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1~2년 일하고 수억, 많게는 수십억 연봉만 챙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CEO리스크로 인한 직원들의 고통과 기업의 이미지 훼손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