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경제학자가 비이성적인 시장의 광기를 언급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하는 사례가 바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다.
당시 귀족들 중 일부가 튤립 수집을 취미로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튤립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튤립 한 뿌리의 값이 대저택의 가격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 이상 튤립을 살 이가 나타나지 않자 버블은 꺼지고, 또한 광기의 한 축을 이뤘던 사람들은 크나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튤립 버블은 내재가치를 무시한 채 군중심리에 따라 투자에 나서는 경우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투자자가 되려면 대중의 반대편에 서서 냉철한 시선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행동해야만 한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점은 뿌리깊은 이 역사적인 교훈을 시장 참여자들 다수가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시장에 형성된 테마를 쫓아 오늘도 갈대처럼 흔들리다가 쓰러진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지난 세기말에 불었던 '닷컴열풍'은 이를 증명한다. 시장이 미친 듯이 흥분하지 않았던들 단지 회사의 이름에 'e' 혹은 '닷컴'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그처럼 발생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돌려보면 이런 현상은 정계, 특히 선거를 앞둔 정치판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당선될 사람'이라는 판단이 설 경우 피말리는 영입전에 나서는 현상을 일컬음이다. 영입 대상의 내재가치, 즉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무관하게 말이다. 때론 정파의 색깔과 전혀 상반된 인물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 때문에 보는 이들은 종종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4·27 강원도지사 재보선을 앞두고 여야가 벌인 '엄기영 영입 작전'은 이런 실소를 불러왔다.
MBC 엄기영 전 사장은 과거 파리특파원 시절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MBC 메인뉴스 앵커로 일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주가를 수직상승 시켰다. 그렇지만 MBC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엔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보수진영으로부터는 "편파방송의 책임자"라는 비난을, 진보진영으로부터는 "MBC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엄기영 전 사장의 영입을 두고 여야가 '선거에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식의 영입 전쟁을 벌였으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중 상당수는 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광기의 '정치판 버전'이라고 여기며 적잖이 민망해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선 "강원지사 후보로는 일찌감치 엄기영 전 MBC 사장 카드가 청와대의 낙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총리급의 거물과 만나 4·27 재보선 출마 제의를 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청와대 역시 비이성적인 인물영입 경쟁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얘기를 옮긴 셈이다.
해당 보도를 두고 청와대는 최근 "4·27 재보선 공천과 관련, 인물을 특정해 청와대가 어떤 입장도 (여당인 한나라당에)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보선을 위한) 공천은 전적으로 당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무엇이 진실일까. 분명한 것은 청와대가 산적한 국정현안을 외면한 채 자그마한(?) 승리를 위해 '정치의 광기'에 동참할수록 아름다운 정권의 마무리와는 멀어진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