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를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생산과정에 참여한 중소기업에도 나누어주게 하자는 '이익공유제'는 지금까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문제제기에 정치권과 익명의 재계관계자들이 맞서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국내 재계 1위 그룹 총수 이건희 삼성전자회장이 특유의 '직설'로 작심한 듯 직격탄을 날리고, 정 위원장이 "삼성이 동반성장 잘한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정면으로 되받아치면서 뜨거운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야와 노동계, 중소기업계가 이 회장 발언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재계는 "전경련이 해야 할 말을 이회장이 대신 해주어 속이 시원하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어 재계 대 비(非)재계 간 대결구도의 기류마저 감지된다.
이익공유제는 얼핏 대기업의 이윤을 빼앗아 중소기업에 나눠주자는 '반시장적' '사회주의적 분배정책'처럼 들린다.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이건희 회장), '좌파적 발상'(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란 원색적 비난도 이 때문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비록 민간위원회이지만 이명박(MB)정부의 동반성장정책을 책임지고 있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그 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대기업을 위한 정부'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등 '친(親)기업'정책을 펴온 MB정부를 생각하면 '이익공유제'는 좀 의외다.
논란이 부각되자 청와대측은 정위원장의 개인의견인 것처럼 거리를 두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정위원장은 MB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음을 거듭 암시하고 있다.
"총리 재직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관계 개선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고 대통령께서 협력사 실태를 더 조사해보자고 하셨다. 위원회 구성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대통령도 받아들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익공유제는 MB정부 입장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중산층은 줄어들고, 소득상위층과 하위층 사이의 간격은 날로 커지고 있다.
사회전반의 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심각한 격차가 원인이라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 성장하는 반면 전체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소기업, 소상공인들의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일로다.
그동안 대기업 · 중소기업 간 상생(相生)협력을 강조하며 대기업들을 독려해왔지만 동반성장에 별 효과가 없어 '특단의 조치'로 들고 나온 것이다.
정위원장은 대기업이 당초 목표한 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냈을 때 이를 주주와 임직원뿐만 아니라 협력 중소기업에까지 나누어주자고 주장한다. 이는 대기업들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이 이미 시행중인 성과배분제 내지 성과공유제를 확대 시행하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익이 많이 났을 때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종업원지주제도'나 경영자에게 지급하는 '스톡옵션'은 성과배분제의 한 형태다. 이는 삼성도 시행하고 있다. 협력업체의 기술개발로 대기업이 원가를 절감했을 때 원가절감액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주는 포스코의 성과공유제(benefit sharing)는 대표적인 초과이익공유제 사례라는 주장이다.
이익의 배분을 공권력으로 강제하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대상 기업과 배분규모를 결정해 시행하되, 정부는 이를 잘 실천하는 대기업에 세제혜택이나 공공기관 발주사업에 우선권을 주는 등 인센티브 부여로 참여를 적극 유도한다는 정책구상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발상이며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펄쩍 뛴다.
대기업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원가절감을 통해 얻은 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눠 갖기 시작한다면 나라 안에서 상생을 할지는 몰라도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해 서로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생산기반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으며, 협력업체와의 마찰을 피해 중요부품사업의 수직계열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으름장이다.
동반성장은 MB가 화두를 꺼낼 정도로 그 필요성은 절박하다.
그러나 그 현실적 수단이 문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는 원래 사적(私的) 계약관계다. 계약의 기본조건인 가격, 즉 납품단가를 당사자들이 공정하게 매겨 '윈윈'을 도모하면 된다. 문제는 이 납품단가결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있다.
중소기업계는 대기업들이 납품 중소업체 이익의 상당부분을 가져가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주는 것이 대기업 경쟁력을 위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후려쳐 수조원의 이익을 챙긴다'는 정위원장의 가시 돋친 비난도 이런 현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익공유제가 능사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초과이익을 공유하려면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원가구조를 낱낱이 파악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불신을 증폭시킬 우려도 크다. 대기업이 연초 이익전망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초과이익 발생소지를 원천적으로 배제시킬 수도 있다.
애플이 플랫폼을 설정해 30%만 받고 애플리케이션 공급사업자에게 70%를 가져가게 하는 것은 초과이익공유와는 다르다. 초과이익공유는 노사관계에서나 거론될 사안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상생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중요한 것은 초과이익공유제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진지하게 찾는 일이다.
이익공유제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 해서 이를 '반시장적' '좌파적' 발상 운운하며 색깔론으로 몰아가거나 무조건 배격은 금물이다.
관치(官治)를 배제하고, 이익공유제의 기본취지를 살리는 데 지혜를 모아야한다.
기업별 업종별 특성에 따라 도입여부나 시행방식을 기업이 자율적으로 판단토록 하고, 한 기업이 성공모델을 만들면 점진적으로 이를 따라가며 확대해 나갈 수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 강화는 시대적 요청이며 특히 납품업체와 협력업체 소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하며 공존 공영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내일의 흐름이다.
진정한 초일류기업은 혼자 잘나가는 독불장군이 아니라 부품업체와 협력 기술기업들이 선(善)순환의 기업생태계를 이루며 바탕을 굳건히 받쳐주는 기업이다.
우리의 동반성장 해법은 이념이나 편 가르기가 아닌, 이 생태계를 일구어가는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