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곳곳에 '구멍'…금융당국은 사후약방문
코스닥 상장사가 회계사를 회유·협박해 감사의견을 조작해 공시하고, 회계법인의 반발로 감사의견이 하루 만에 '적정'에서 '거절'로 뒤바뀌는 등 초유의 회계부정 '미수' 사건이 발생,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특히 개별 기업이 회계감사인을 직접 지정하고, 금융당국은 사후감리만 하는 현재와 같은 기업 감사제도 시스템에서는 이번과 같은 사건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는 이번 사건이 기업 회계감사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상실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업 회계감사 어떻게 이뤄지나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제도는 독립된 제3자인 외부감사인(회계법인 및 회계사)이 경영자가 작성한 재무제표를 감사하고, 회계처리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작성됐는지를 전문가로서 의견을 표명하는 제도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의 건전성과 투명성 확보, 이해관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기업의 경영성과 등이 재무제표 등을 통해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판단하는 필요한 고도의 작업인 셈이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직전 사업연도말 자산총액 100억원 이상인 주식회사, 자산총액이 70억원 이상으로서 부채총액이 70억원 이상이거나 종업원이 300명 이상인 주식회사는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상장사는 자산총액에 상관없이 반드시 외부감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기업은 사업연도 개시일로부터 4개월 안에 자체적으로 감사인을 선정해 외부감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감사인은 사업연도말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실사를 거쳐 해당 기업이 적합한 회계처리를 했는지를 판단해 '적정, 한정, 부적정, 거절' 등의 의견을 감사보고서에 명시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게 된다.
◇곳곳에 사각지대…감독당국 '사후약방문' 처방
회계사 협박과 감사의견 번복을 통해 혼란을 일으킨 제일창업투자와 같은 사례는 충분히 재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회계감사가 기업과 회계법인간 사적계약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다 금융감독당국은 사실상 사후 대응만 할 수 있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내부에 외부감사인선정위원회를 둬 감사인을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소형 규모의 기업은 대표이사 등 경영진의 의사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당국이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해 줄 수 있는 경우는 사업연도 개시일로부터 4개월내에 감사인을 선정하지 못하거나 기업회계기준 위반 사실이 있을 때로 한정되지만 흔치는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사의견에 대한 회사측과 회계사간 조정 및 조작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23일 국내 대형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특정 기업의 회계감사 결과에 대해 회계법인 내부에서 의견을 조정하고 공식화하는 심리시스템이 있어 기업과의 유착을 통해 의견을 변경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면서도 "악의적인 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 회계사는 "대부분 회계법인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운영과정에서 적절치 못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시스템 리스크라기 보다는 운영리스크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기업들이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회계법인들이 적정하게 감사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매년 감리를 한다.
하지만 감사보고서 제출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금감원이 선정한 표본감리대상 기업은 240개사다.
회사와 회계사가 짜고 회계부정을 저질렀음에도 금감원의 '레이더망'에만 걸리지만 않으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다.
특히 금감원의 표본감리대상 기업이 많지 않다보니 한 기업의 평균 회계감리 주기는 8년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보고서 제출 대상이 워낙 많다보니 전수조사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감리를 진행하더라도 과거 감사보고서를 모두 들여다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은 기업들의 회계부정을 막기 위한 신고포상제도를 2006년 9월에 도입해 실시하고 있지만 실적은 썩 좋지 않다.
2007년 2건, 2009년 2건, 2010년 2건 등 총 6건에 불과하다.
◇감사인 처벌·보호제도 뭐가 있나
외감법에서는 기업들의 회유ㆍ협박 등으로부터 감사인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외감법 19조∼21조는 감사인과 기업의 회계부정에 관한 처벌 규정이 담겨있다.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거짓으로 재무제표를 작성, 공시할 경우 감사인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해당 기업도 양벌규정에 따라 동일하게 처벌된다.
기업이 감사인에게 거짓으로 자료를 제시하거나 방해 등을 하는 경우도 처벌 대상이 된다.
감사인은 대상 기업이 감사를 방해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외감법 6조)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