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금융감독원은 회사에 불이익을 주는 감사의견을 내놓았다가 회사측의 회유와 협박을 못 이긴 회계사가 감사의견을 조작한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대상 기업의 부실을 눈감아 주지 않고 감사인으로서 '양심'을 택한 회계사의 '용기'가 감사대상 기업의 회유와 협박에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회계시장 전반에 걸쳐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가늠해 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눈 깜짝할 사이 조사를 마친 뒤 "감사보고서 조작 사건은 회계사 개인의 단독행위였다"고 결론지었다. 협박 여부에 대해선 "이 부분은 주관적 판단이어서 본인 확인이 필요하지만 해당 회계사와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행보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일단 너무 성급히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 문제다.
이 사건은 회계부정 소지가 다분한 사건이다. 음지(陰地)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은 사건을 축소하고 진실을 덮는데 급급한 모습이 역력하다. 감독당국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을리는 만무해 보인다.
특히 감사대상 기업이 회계사를 협박했다는 부분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만의 '고민'으로 묻혀있던 시장의 '치부'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투명회계 파수꾼들인 회계사들의 양심이 이익에 눈 먼 이들의 '겁박'에 흔들린다면, 이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회계사들이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보호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회계사회의 근본적인 존재 목적은 소속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계사회는 현재 감사인의 감사의견 형성과정에서 감사결과 불만 등으로 폭행, 협박 등 위협을 받아 감사인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사례를 신고할 수 있도록 신고센터를 금감원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13건의 신고사례가 접수됐다는 후문.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다. 견디다 못해 신고를 한 케이스들일 뿐 신고할 생각조차 갖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회계사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회계사회는 미리 미리 이런 내용을 신고해 주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고민할 수 있지만 신고를 하지 않으면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줄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회계사회 관계자는 협박 사례 발생시 즉각 회계사회로 신고해 줄 것을 권고하는 한편 사무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거나 정도가 심할 경우 경찰에 신고하도록 회원들을 계도하고 있지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적 측면의 접근이 절실해 보인다.
회계사 업계 안팎에서는 감사인 위협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게 형성되고 있는 상황. 회계사회도 최근 이와 관련한 법개정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감독당국과 회계사회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투명회계 파수꾼들의 '양심'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