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국민들에 널리 읽히고 있는 비문학분야의 스테디 셀러는 '정의론'에 대한 서적들이라고 한다.
원래 정의론은 비중있는 철학과목이기는 하나 난해하다고 하여 그동안 일반인에게는 외면되던 분야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라 전체가 이러한 고담준론을 탐닉하는 흐름을 보이고 정부도 납세, 국방 등 국민의 기본의무와 관련된 분야에서의 공정의 실현을 국정목표로 두고 이의 구현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의 실현의 주요 목표가 되어버린 조세분야에서도 이를 정책과 집행에 반영하려면 그 내포에 관하여 한번 쯤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정' 하다는 어휘는 그 자체의 함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 이로부터 바로 전체 납세자를 설득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정책을 도출하여 보여 주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경우 기존의 경험으로 검증된 정책 이념에서 출발하여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세무분야에서 공정개념과 가장 근접해 있는 개념으로는 지금까지 과세행정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고, 체납의 일소 및 세무조사로 대변되는 '사정'의 개념일 것이다.
그 동안 세무분야는 주기적으로 사정차원에서 탈세와 체납의 정리를 주기적으로 행하여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실시해온 사정은 그 효과가 지속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반짝 효과를 보인데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새로이 공정의 개념을 앞세워 접근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달리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사정의 차원을 넘어 그 효과가 지속적일 수 있는 항상(恒常)적인 조치가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까지 세정의 부조리에 대응하던 기존의 '보이지 않는 생각의 유리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세에서의 사정이라는 한계를 넘어 공정세정이라는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부연하여 설명을 하자면 국민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터잡아 마련한 조세에서의 공정요구를 잘못 이해하여 기껏하여 종전과 같이 사정에 중점을 둔다면 과거의 정부들이 해 온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회의만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집행기관으로서는 기존 사고의 틀에 갇혀 새로운 정책을 보여주지 못한 정책의 빈곤 내지 아이디어의 빈곤만을 드러내게 되고, 납세자의 대응도 사정의 한때를 피하면 된다는 '숨바꼭질' 정도의 수준에서 서로간의 대응방안이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마치 유리상자내에서 튀는 공의 한계처럼 일정한 틀내에서 반복된다는 매너리즘의 문제가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체납정리, 세무조사강화 등 일련의 관련조치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으나 이러한 오해를 줄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해 보인다.
심지어 경제단체장들과 세무당국과의 상견례에서도 세무조사의 완화 요구가 첫 일성으로 있있다는 것은 사정이든 공정이든 납세자인 기업으로는 같은 차원에서 이해하여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원래 세무조사는 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마지막 무기를 가지고 언제나 납세의 부조리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고를 뛰어 넘어야 사정을 넘어 공정세정이 정착되지 않을까 한다.
원래 정부의 기능은 보이지 않는 사이에 조용히 문제를 추출하고 예방적 차원에서 대책을 미리 세우는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집행기관이 기회가 있으면 세무조사강화를 앞세우는 것은 스스로 대책 없음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납세자들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들도 기업의 입장에서 관찰한 공정 세정을 위한 제도적 보완에 대하여 과세당국과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지, 세무조사를 완화해 달라는 주문은 더 이상 적절치 않다고 본다.
실은 우리의 세정사를 돌이켜 보면 납세자의 납세순응도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해 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납세순응의 단기간 향상이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는 결국 정부에 의하여 수시로 필요한 세제의 보완을 통하여서 이룩한 결과이고, 국민 그리고 주민의 납세의식의 수월성의 함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납세에서의 공정은 앞으로는 사정의 차원을 저 멀리 뒤로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정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어야 사정에서 자유로운 정책과 제도들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세정기관들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모처럼 정의론에 터잡은 공정이 국정지표로서 내실화되고 관련 제도화, 그리고 집행에서의 기준을 정하는 이념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가위상에 걸맞게 우리스스로 세제와 세정의 모델을 정립해 나가야 할 시점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의 틀에서 비로소 '창의 세정(創意 稅政)'이 빛을 발하게 되고, '보살핌의 세정'이 정책의 우선순위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