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도매상과의 거래 합법이다", 세무당국 "위장거래다"
국세청이 자료상으로 의심되는 일반대리점(석유제품 도매상)과 거래한 주유소들에 대해 억대의 세금을 부과하자 주유소 업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업주들은 정부가 허가한 대리점과 합법적으로 거래했고 세금까지 납부했는데 자료상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거래내역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억대의 징벌성 세금을 부과한 것은 지다치다고 항변하고 있다.
세금을 추징당한 주유소들은 관할 세무서나 중부지방국세청의 부당과세라며 이의신청을 냈으나 대부분 인정받지 못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금폭탄에 신음하는 주유소들 =경기도 남양주시 K주유소는 지난해 10월 관할 세무서로부터 부가가치세 1억8천700여만원과 가산세 2천여만원 등 2억여원을 내라는 세금고지서를 받았다.
주유소와 거래한 석유대리점인 Y에너지가 실제 거래는 하지 않고 세금계산서만 발급하는 자료상 혐의가 있어 지난 2009년 1년간 Y에너지와 거래한 10억9천여만원 상당에 대한 세금을 내라는 통보였다.
안양의 G주유소 역시 지난 1월 Y에너지로부터 같은해 구입한 8억8천여만원에 대한 부가세 1억5천844만원을 부과받았고 서울 서대문구 S주유소도 1억8천여만원의 세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처럼 Y에너지로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을 공급받은 수도권지역 98개 주유소 대부분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부가가치세와 과징금을 추징받았다.
Y에너지가 거래한 또 다른 도매상이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실제 거래를 하지 않고 영수증만 주고받은 자료상으로 판명됨에 따라 관할 세무서는 이들 도매상과 관련있는 모든 주유소를 위장거래점으로 보고 과세한 것이다.
이들 주유소는 이에 따라 Y에너지와의 실제 거래를 증명할 수 있는 출하전표, 입출금 통장사본, 세금납부내역 등을 제시했지만 관할 세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남양주 K주유소 관계자는 "세무서에 도매상과 거래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제출했고 특히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으로 은행에서 도매상에게 직접 지급한 유류대금 통장사본 내역까지 제출했지만 세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왜 과세했나 =일선 세무서는 중부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Y에너지가 실제 거래는 하지 않고 세금계산서만 발행한 자료상으로 의심돼 자료상과 관계된 모든 도.소매상의 거래는 불법이라는 판단이다.
Y에너지는 자료상으로 판명된 또다른 도매상 D사와 지난 2009년 275억여원어치를 거래하면서 가공세금 계산서를 받았고 이를 98개 주유소에 실물거래 없이 278억원 상당의 가공세금 계산서를 또다시 발행했다고 세무당국은 보고 있다.
세무당국은 특히 도매상과 주유소간 오간 은행 계좌이체방식의 현금거래마저도 실제 거래를 위장하기 위한 자금세탁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세무당국은 도매상으로부터 휘발유나 경유를 구입할 때 반드시 정유사가 발행한 출하전표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주유소들은 도매상의 출하전표만 갖고 있었다며 위장거래의 증거로 제시했다.
통상 정유사가 발행한 출하전표에는 정상 유통된 유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종, 수량, 차량번호, 유류의 밀도, 온도 등이 쓰여있지만, 도매상이 발행한 전표에는 그런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Y에너지가 발행한 출하전표상 운반차량번호와 운반일자별 출하내역을 SK 등 4대 정유사에 조회한 결과 정유사 출하전표상 인도지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며 세금계산서상 공급자와 실제 공급자가 서로 다른 것은 자료상으로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세무당국은 이에 따라 일선 주유소들이 정상적인 유통절차를 알고도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허위거래를 했거나 불량기름을 유통하기 위해 이같은 수법을 썼다며 주유소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양주세무서 관계자는 "도매상인 Y에너지는 저장시설이나 자체 보유차량도 없이 사무실과 전화만 갖고 영업하는 페어퍼컴퍼니"라며 "따라서 주유소들이 제출한 출하전표역시 유류를 정상 거래하지 않고 세금계산서만 발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왜 반발하나 =주유소들은 세무서가 기름의 유통경로는 고사하고 관계 법률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2009년 1월 경쟁을 통해 유류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대리점과 대리점간의 수평거래를 전면 허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석유제품 수평거래 금지규정이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경쟁을 막아 시장가격 형성기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그해 5월1일부터 규제를 철폐했다.
이에 따라 석유류를 판매하는 대리점은 전국에 500여개로 늘었고 이들 대리점은 정유사로부터 일시에 많은 물량을 확보한 뒤 주유소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대리점들은 정유사들에 비해 통상 ℓ당 10~20원 가량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유류를 주유소에 공급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대리점과 대리점간의 거래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더구나 대리점들은 주유소로부터 구매주문을 받으면 자체 저장시설을 거치지 않고 정유사로 연락해 저유소에서 보관 중인 유류를 해당 주유소로 직접 배달한다.
이 과정에서 주유소는 도매상이 발급한 출하전표를 받게되고 결국 유류의 주문지와 도착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Y에너지 관계자는 "우리는 자체 저장시설과 보유차량을 갖고 있는 합법적인 도매상으로 주유소와 정상적인 거래를 했고 허위계산서를 발급한 적이 없다"며 "그러나 기름의 유통경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세무당국이 일방적으로 과세했다"고 비난했다.
서울지법과 인천지법은 지난 2009년 7월과 12월 대리점간 수평거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국세심판원도 지난해 "도매상이 자료상으로 판명됐다고 해서 주유소와 도매상간의 모든 거래가가 가공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주유소측에 승소판결했다.
남양주 K주유소 관계자는 "대형 가전매장에서 TV 등을 구입할때 해당 판매점의 출하전표만 받으면 됐지 삼성이나 LG가 발행한 출하전표까지 받아야할 의무는 없다"며 "정부가 허가한 도매상으로부터 받은 출하전표마저 인정할 수 없다면 무엇을 믿어야 하냐"고 반문했다.
안양 A주유소 김모 사장은 "최근 지식경제부에 민원을 제기한 결과 수평거래는 관계법령에 적법하다는 답변을 받까지 받았으나 세무당국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법으로 보장된 수평거래를 인정하지 않으면 기름값은 더욱 올라가고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하는 유가 인하정책도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