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部 판결에도 전부 의견 물어…사회적 파장 고려한 듯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 배상 소송에서 국가 배상액을 대폭 깎은 판결이 대법관들의 `비공식적인 전원합의'를 토대로 해 작성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1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 지연손해금(이자) 발생 기준을 변경해 실제 배상액을 줄인 판결을 선고했지만 실제로는 그에 앞서 대법관 전원의 견해를 물었다는 것이다.
이들 과거사 사건은 `판례 변경에 해당돼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했어야 한다'며 당사자들이 재심을 청구한 상태라서 실질적인 전원합의를 거치고도 소부에서 판결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12일 대법원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사건은 대법원 3부에 배당됐으나 이 부 소속 차한성, 박시환, 안대희, 신영철 대법관은 수차례 검토한 끝에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른 대법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며 `전원보고 안건'을 올렸다.
이들은 이미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손해배상 원금에서 공제하는 문제와 지연손해금 기산일 등에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법관 전원이 검토한 끝에 물가변동을 반영해 이자기산일을 불법행위 시점이 아닌 사실심(2심) 변론종결 때로 바꾸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모아지자 별도로 전원합의 의결을 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애초 이자기산일을 불법행위 발생 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대법관도 굳이 반대의견을 개진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보다는 소부의 판결이 상대적으로 파장이 덜하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부에 배당된 사건이라도 사안이 중대하거나 다른 대법관의 견해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 대법관 전원에게 보고를 하고 의견을 묻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서 대법관 전체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질 경우 다른 사정이 없으면 전원 보고된 사건이라도 소부에서 판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 선고 직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지금까지 대법원이 일관되게 지연손해금은 불법행위시부터 산정한다고 판시했으므로 판례 변경에 해당하는데도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논평을 낸 바 있다.
또 최대 수백억원의 배상금이 줄어들게 된 인혁당 사건 등의 피해자와 유족도 재심을 청구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상 최고 판단기구로 각 부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소수의견이 나오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할 사유가 있는 주요 사건을 담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