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세금계산서를 밥먹듯 작성하는 '자료상'들과의 거래도 마찬가지. 납세자 본인은 결백해도 추후 언제든지 과세당국에 부가가치세를 추징 당할 근거로 남게 됩니다. 애초부터 자료상과의 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요.
일선 세무서 납세자위원장까지 역임했던 한 사업가가 한 번의 실수로, 자료상과 거래했다가 뜻하지 않게 낭패를 본 사연을 소개합니다.
□ 뜻밖의 세금고지서 = 고금(雇金) 등을 사들여 가공하는 귀금속 도매업자 A씨는 지난 2008년 1기 부가세 과세기간에 B사로부터 약 5700만원 상당의 금을 사들여 인터넷 뱅킹으로 금액을 지불한 뒤, B사가 발행한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과세당국에 세금신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국세청의 점검결과, B사는 가짜영수증을 유포하는 '자료상'이었고 이에 A씨가 제출했던 세금계산서도 진실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국세청은 기존의 매입세액 공제, 손금불산입 처리를 불인정, 지난해 1월 A씨에게 부가세 997만원과 법인세 925만원을 다시 납부하라는 내용의 세금고지서를 발부한 것입니다.
□ 국세청 "전형적인 자료상, 손금불산입도 불허" = 국세청은 B사가 전형적인 자료상의 수법을 이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가 인터넷뱅킹으로 현금을 입금하면 B사는 이를 즉시 출금하는 거래형태를 보였다는 겁니다.
B사를 고액의 가짜영수증을 수수한 조세포탈혐의로 관계기관에 고발까지 한 상황에서 A씨의 실물거래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국세청이 B사의 자료상 혐의를 붙들 수 있었던 것은 A씨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 은혜를 원수으로 갚은(?) 국세청 = 세무서 납세자위원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성실납세자임을 자부했던 A씨는 자료상과의 의도치 않은 거래로 일순간 과세당국으로부터 탈세자로 낙인찍힌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A씨는 조세심판원에 불복심판을 청구하며 "납세자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4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의심스러운 자료상거래에 대해 과세당국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A씨는 B사와의 거래과정에서 법인등기부등본과 사업자등록증 등을 꼼꼼히 확인했고, 그 결과 사업자등록증에 귀금속 도매업이 표시돼 있지 않았던 점을 찾아내 B사에 항의를 할 만큼 애초부터 탈세를 위한 거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B사의 행태가 의심스럽자, 평소 친분이 있던 관할세무서 세원정보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B사가 자료상으로 의심된다며 '자진신고'까지 했다는 겁니다.
당장 탈세자로 낙인찍혀 세금을 추징 당한 A씨로써는 은혜(자진신고에 의한 자료상 적발)를 원수(세금추징)로 갚은 국세청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
A씨는 "금 매입시 인터넷 뱅킹 등 정상적인 송금과정을 거쳤다"며 "단지 B사가 자료상이란 이유만으로 국세청이 이 밖의 어떤 증빙도 없이 과세한 것은 근거과세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 '절반의 성공'…심판원 "법인세만 취소하라" = 사건을 심리한 조세심판원은 A씨의 주장을 일부만 인용했습니다. A씨에게 부과된 세금 중에 법인세는 취소하더라도 부가세는 납부해야 된다고 결론 내린 것입니다.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해당 과세기간 동안 B사가 75억원 상당의 가짜영수증을 발행했고 세무조사 결과 B사 대표이사 탁 모 씨가 실지사업능력이 없는 명의대여자로 조사된 점에 비춰 과세당국이 근거과세 원칙을 위배했거나 A씨가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과세당국의 부가세 처분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심판원은 "고금의 특성상 규칙적으로 공급되지 않고 다양한 거래처로부터 매집할 수 밖에 없고, 해당 거래가 2008년 6월 이뤄진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거래로 보인다"며 "A씨가 휴대폰으로 사들인 고금 등을 사진촬영 해 보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지매입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A씨가 처분청의 세원정보팀장에게 위장거래혐의를 제보한 점과 함께 송금한 거래대금이 재입금 된 사실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인 자료상 거래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심판원은 "쟁점금액을 손금불산입해 법인세를 과세한 처분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A씨 주장의 일부를 수용했습니다.
평소 자타가 공인하는 성실납세자인 A씨의 사례만 보더라도, '자료상'과의 거래는 언제 어디서든 사후 '부가세'를 추징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떠 안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입니다. 그것이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참고심판례: 2010서1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