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등 조사·감사기관, 사기업체 취업 '전면제한' 검토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정부의 발걸음이 공직사회 전반에 암세포처럼 퍼져 있는, 고위공직자 '전관예우(前官禮遇)' 관행 척결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부실사태의 원인이 금융감독기관 퇴직자의 전관예우와 이에 따른 불법유착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에서 퇴직공직자의 사기업 취업제한 규정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
이와 함께 지난 17일 판·검사들을 대상으로 퇴직전 최종근무지 사건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전격 시행된 점도 정부의 전관예우 척결 움직임에 힘을 잔뜩 실어주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 상반기 내로 개최할 예정인 제3차 공정사회 추진회의 '포커스'를 공직자 윤리문제에 맞추고,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대책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안부는 당장 국회에 계류중인 14건의 전관예우 금지 관련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토대로 심도 있는 분석·검토를 진행하는 한편, 퇴직공무원들의 업무연관 사기업 취업 및 정부 대상 불법 로비를 차단하기 위해 공직자 전관예우 규제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키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의원들이 입법발의한 법개정안 중 ▲취업제한 사기업 범위확대 ▲퇴직 전 업무연관성 적용기간 연장(3년→5년) 등은 대부분 정부 대책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고위공직자들의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법무·회계법인 및 금융지주회사 등을 취업제한 업체로 명시하는 방안이 이번 대책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조사·감독기관에 근무한 고위공직자의 경우 퇴직 후 일정기간 동안 사기업체 취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될 예정이다.
□ 로펌·회계법인·금융권 취업제한…"사각지대 없앤다" = 현행 공무원윤리법령에서는 4급 이상 재산등록·공개 의무가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경우 퇴직 전 소속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취업이 제한되는 사기업체 범위는 자본금 50억원 이상이며 외형거래액 연간 150억원 이상인 기업체로 규정, 고위공직자 대부분은 퇴직 후 대기업 근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들의 퇴직 후 '알짜배기' 취업코스로 잘 알려진 법무·회계법인 등은 대부분 자본금이 50억원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아무런 제재 없이 취업이 가능한 상황이다.
법무·회계법인 등에 취업한 퇴직공무원들은 법원판결을 비롯한 각종 쟁송 및 정책입안·집행 과정에서 정부를 상대하는 '로비스트' 역할을 수행하며 해당 업체에 특혜·편의를 제공하는 등 불공정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 주요부처 고위공직자들에게 업무연관 사기업 취업이 쏠쏠한 '퇴직금'이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사기업들도 고위공직자들의 정보력과 정부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활용하고자 거액의 몸값을 들여가며 영입에 열을 올려왔던 것.
실제로 지난 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대형로펌 진출 공직자 현황'에 따르면 국내 6대 로펌의 전문인력 96명 중 무려 55.2%(53명)가 국세청·공정위·금감원 등 정부부처 출신 공무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 박영선 의원(2008년), 자유선진당 김낙성 의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상 2010년), 민주당 조영택 의원(2011년) 등 다수의 의원들이 법무·회계법인을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법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했다.
특히 올해 개정안을 발의한 조영택 의원은 취업제한 대상에 금융감독기관 퇴직공무원들의 취업이 잦은 '금융지주회사'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대책에도 법무·회계법인은 물론 금융지주회사를 퇴직공무원 취업제한 업체로 명시하는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 국세청 등 조사·감독기관 공무원은 "사기업 취업 전면금지" = 국세청·공정위·금감원 등 조사·감독기관에 근무했던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자본금 및 외형거래액 등 취업제한 업체 선정기준에 관계없이 사기업 취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번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조사·감사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이 사기업 취업후 '관계'를 미끼로 각종 불법로비 등 위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사회 전반에 파급되는 부정적인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국회 계류중인 법안 중 현행 취업제한 업체 금액기준을 자본금의 경우 50억원 이상에서 5억원 이상으로 강화하거나 외형거래액 기준을 15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조정해 규제하는 방안은 즉각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퇴직전 3년으로 정하고 있는 소속 부서 업무 적용기간도 최대 5년까지 늘리고, 취업제한 요건에 포함된 퇴직 전 공무원 소속 범위도 현행 '부서'에서 '기관' 수준으로 대폭 확대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 어제오늘 문제 아닌 전관예우, 규제 실효성은? = 여론이 충분히 형성돼 있고, 정부가 대책마련에 착수한 상황이지만,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이 쉽게 고쳐질지는 미지수다.
퇴직 후 자신이 맡았던 업무와 관련이 깊은 사기업에 취업, 부하직원 및 후배들에게 각종 압력을 행사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전관예우 관행은 그동안 꾸준히, 장기간에 걸쳐 진행됐음에도 그동안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된 적은 없었다.
당장 퇴직 공무원들을 대거 고용해 짭짤한 이득을 챙겨온 대기업 및 대형로펌의 반대로비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들은 국회 법개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퇴직 이후 '밥그릇'을 걱정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반발과 퇴직공무원들의 '취업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 논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8대 국회에서만 14건의 퇴직공무원 전관예우 금지법안이 발의됐지만, 이 중 단 한 건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도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