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말하는 상황인데…" 지적들 나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감사원 은진수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짐에 따라 청와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
청와대는 26일 이 대통령이 은 감사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김희정 대변인은 관련 브리핑에서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면서도 철저하게 처리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민과 중산층을 분노케 만든 인사를 성역 없이 다룰 계획임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가 관련 사건에 의연하게 대처해 나아가고 있음을 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제기된 의혹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로 접어들 무렵 이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어떤 비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기 말 친인척 비리 및 권력형 비리로 인해 무너진 이전 정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자기 주변에 경고음을 울린 셈이다.
그러나 작년 말 이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올 1월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시 인연을 맺은 배건기 청와대 감찰팀장이 '함바 비리'에 연루된 의혹으로 사직했다.
서울시 경영기획실장으로 이 대통령을 도왔던 최영 강원랜드 사장, 장수만 방위사업청장도 함바 비리에 휘말리면서 구속되거나 현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부산저축은행 관련 의혹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을 향한 비리 의혹의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관련 인사들의 무게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청와대가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히 크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MB의 스타일에 맞춰 코드인사를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인사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며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임기 말 이명박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지난해 후반기부터 '공정사회'를 언급해왔다"고 상기시키며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져 곤혹스럽다. 자칫 정권이 크게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말로 우려를 나타냈다.
은 감사위원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야당들은 일제히 청와대 등 정권 핵심부를 겨냥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BBK 해결사 은진수 씨의 부도덕성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며 "명박 정부는 이념적 무능상태와 도덕적 무능상태에 있다. 지금이라도 이념적 집착에서 벗어나 민생만 봐야 한다" 주장했다.
같은 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진수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퇴출저지 로비를 벌인 의혹이 드러나면서 정권 말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감사원마저 비리커넥션에 휘말리게 한 MB정부의 잘못된 인사정책을 국민들은 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웅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이 정부가 외치는 공정사회가 허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감사원은 자신에게 부여된 막중한 임무를 망각하는 감사위원의 비리의혹을 낱낱이 밝히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들은 "은진수 감사위원의 로비 의혹 사건이 이명박 정권의 초대형 권력형 비리의 신호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며 검찰을 향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황우여 원내대표조차 "국민의 감사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정치권에서도 수사의 전모가 밝혀지는 대로 필요시에는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은진수 비리의혹 사건에 따른 비판이 각계에서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은 감사위원을 임명한 이 대통령은 해당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비리에 한치의 관용도 없이,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라"며 "성역없이 모든 사안을 철저히 조사해 국민 앞에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27일 오전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확대비서관회의를 열었다. 임 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내년 총선에 나갈 비서관들에게 속히 거취를 정리하라는 뜻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떠날 사람은 빨리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어수선한 청와대 분위기를 추슬러 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분석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