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구조개편 공청회…부실개편 우려 쏟아져
대농민 사업 위축 개선 취지 무색…금융지주 준비도 미흡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신용과 경제사업 분리) 시점이 내년 3월로 성큼 다가온 가운데 '과연 누구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재차 제기됐다.
11조원에 달하는 빚을 떠안은 농협이라는 거대한 선함이 출항도 하기 전에 우려의 눈길을 따갑게 받은 것.
당초 농협의 구조개편 논의는 신용사업에 치중된 사업구조로 대농민 사업이 위축된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을 치유하고자 진행되는 농협의 신경분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5일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는 민주당 정범구·김효석 의원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공동주최로 '농업협동조합중앙회 구조개편, 왜 문제인가'라는 공청회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농협의 신경분리가 당초 대농민 사업 강화와는 동떨어진 지주회사 체제의 메가뱅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 농협 빚잔치에 농민만 죽는다(?) =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협 신경분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농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인데 (정부와 농협이)근본 중의 근본을 외면한다"며 "제대로 된 신경분리가 될 때까지 시행 시점이 연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그는 협동조합이 수익사업에만 매몰돼 농민에게 봉사한다는 기본 정신에서 멀어져간 것을 되돌리고자 추진된 당초 신경분리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에 따르면 농협의 신용사업 부문이 중앙회 인력의 76%를 차지하며, 자산의 경우 69% 수준인데 이는 지난 2008년 기준으로 전체 자산 260조원 중 183조원에 달한다.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300만 농민의 자주적인 결사체인 농협조합을 둘로 분리해 지주회사로 가는 것이 맞느냐"고 되묻고 "지주회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곳인데 농민의 자주적 결사체를 수익만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바꿔야 하느냐"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농협은 11조원의 빚잔치로 사업구조 개편을 시작해야 하는데 원금과 이자를 계속 갚으며 어느 세월에 농민과 농업을 위한 사업을 할 것이냐"며 "지주회사체제로 가면 상층부에 자리가 늘며 농민은 죽어나가도 그들은 떵떵거리며 잘사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오는 2012년 농협이 신경분리를 하려면 총 27조200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하지만 현재 농협이 보유한 자본금은 15조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12.2조원의 자금수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부에서는 농협에서 요구하는 6조원에 크게 못 미친 부족 자원금 4조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정부는 이 중 3조원을 농협이 상호금융특별회계차입 또는 농업금융채권 발행 등으로 직접 차입해 조달하고 이에 대한 이자(1500억원)만 보전해주기로 한 상황.
이에 따라 농협은 8.2조원을 자체 차입 등으로 조달하고 1조원은 BIS비율을 맞추기 위한 유가증권 현물 출자를 해야 하는 등 11조원을 빚져야 하는 처지다.
이 때문에 이날 토론자들은 "농협이 지게 되는 11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빚은 결국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오는 것"이라며 한목소리로 우려를 제기했다.
■ 준비안된 신경분리-미래 암울하다 = 농협의 미흡한 신경분리 준비 상황도 도마에 올랐다.
허 권 농업중앙회 노동조합 위원장은 "내년 3월에 경제, 금융지주 출범으로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냐"며 "(도시 소비자들은)고품질의 농산물을 싼 값에 사고 농업인들은 제 값을 받고 파는 새로운 세상은 현재의 사업구조 개편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인천 지역 하나로클럽의 경우 1년에 100억원씩 적자를 보는데 과연 경제지주가 출범했을 경우 자본의 논리로 어떻게 소비자와 농민에게 피해가 안 갈 수 있냐"며 "금융부문도 빚이 11조원인데 대형 기업처럼 30%의 매출이익을 내려면 그 피해가 누구에게 갈지 뻔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농협의 신경분리로 경제부문에 3.5조원이 배분됐는데 고정자산이 그대로 가는 것일 뿐 현재와 달라지는 점은 없다"며 "금융지주의 돈이 모자라 문제가 생길 경우 농협은 정부나 외국자본, 사모펀드 등의 자금 수혈을 받으며 자본의 논리에 희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내년도에 출범하게 될 농협의 생명과 화재 등 2개의 보험사의 경우 아직 전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며, 지급여력비율에 있어서 1억원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년 3월로 다가온 신경분리 일정의 촉박한 상황을 알렸다.
■ MB, 가락동시장 발언-말뿐인 농협개혁(?) = 민경신 전국농업협동조합 노동조합 위원장은 "협동조합이 경쟁의 논리로 가는데 이것이 맞느냐"고 공청회 참석자들에게 되물어 긴장시켰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인데 여기에 경쟁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냐는 반문이다.
민 위원장은 "정부는 농협의 금융부문을 보고 대형투자은행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는 농민을 수탈해서 자본시장에 주겠다는 것"이라며 "중앙회에서 경제사업 활성화 방안으로 내놓은 SSM(기업형 슈퍼마켓)도 농촌의 지역 상권을 작살내겠다는 것이며 농민을 살리려는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해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 주겠다'고 발언한 시점으로 돌아가 그의 입을 막고 싶다"며 "그가 이후에 진행한 지주회사 방식, 농협 대형화 등의 사업구조 개편은 그동안 내부에서 진행해 온 17년여간의 개혁 논의를 깡그리 뭉개 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결국 농협 중앙회의 부실은 지역농협과 농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고 가장 먼저 치는게 농협이라는데 이제 농협은 더이상 '동네북'이 되지 말고 한국 농업의 '신문고'로 거듭나기 위해 연대전선을 확장해 농협법 재개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