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명 '부자연금'이라고 불리는 즉시연금보험 상품에 대해 기존 비과세 혜택을 폐지·축소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고자 비과세 특례를 적용한 즉시연금보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 보장과 다양한 비과세 혜택이 보태지면서 부자들의 투자상품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13일 기획재정부 및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오는 8월 초 발표될 예정인 2012년 세제개편안에 즉시연금 과세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세제실 등 과세당국이 즉시연금에 대한 세제혜택이 너무 과도하다는 학계 등의 지적을 수용,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제도개선 작업에 착수했다는 설명이다.
만약 올해 세제개편안에 즉시연금 과세 방안이 포함돼 내년부터 시행될 경우, 약 2조4000억원 이상의 즉시연금보험 시장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즉시연금 보험료 2조3789억원, "부자라면 하나쯤은" = 즉시연금은 보통의 연금 상품들과 달리 한꺼번에 목돈을 보험업체에 내고, 바로 다음달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보험상품.
당장 수중에 가진 돈은 많지만 따로 뚜렷한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퇴직자들에게 적격인 셈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 노후설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커지며 즉시연금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다.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개 생명보험사가 거둔 즉시연금 수입보험료는 2조3798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8년 3306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4년 사이에 수입보험료가 7배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즉시연금은 높은 이자율을 보장하는 대신 보통은 1000만원, 많게는 1억원 이상의 최소 가입금액이 정해져 있어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여유 돈이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이 최소 가입금액을 마련하기 쉽지 않기 때문.
즉시연금 가입자 대부분이 상당한 금융자산을 소유한 고액자산가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비과세' 날개(?)단 즉시연금…투자상품으로 '추락' = 특히 즉시연금은 거액의 자금을 일시에 납입하면, 높은 이자가 붙여져 다음달부터 바로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상당한 세제혜택까지 갖추고 있다.
즉시연금 가입자는 10년 이상 보험계약을 유지할 경우 4% 후반대의 높은 이자를 받으면서도, 이자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연금액도 연간 4000만원을 기준으로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게다가 다른 금융재산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들에게 상속할 경우 상당한 상속공제 혜택까지 적용되는 잇점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 말 그대로 금융소득 비과세·감면 혜택의 '결정판'인 것이다.
즉시연금에 이 같은 백화점식 세제혜택이 적용된 이유는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비과세 제도의 허점이 악용, 즉시연금이 일부 부유층의 금융투자 수단으로 전락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세제당국은 보는 분위기다.
□ 세제당국 과세 움직임…보험업계 강력 반발 =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려는 즉시연금 비과세 혜택의 취지가 무색해지며 자산가들의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자, 그동안 학계 등 세무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문제점이 제기돼 왔다.
목돈을 일시금으로 납입하고 곧바로 연금을 수령하는 즉시연금의 경우 보통의 연금소득과 달리 사실상 이자소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노후생활 안정을 지원한다는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문제가 있다"며 "본래의 제도 취지에서 벗어났다면 과세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과세당국도 최근 들어 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폐지·축소하고, 적정 기준을 만들어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즉시연금에 대한 세제혜택이 과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며 "정부도 개선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과세당국은 즉시연금 과세를 전면 시행할 경우 시장에 줄 충격을 우려, 과세 여부 및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다.
특히 전면 과세로 전환할 경우 소급과세문제는 물론 기존 가입자들의 이탈이 우려되기 때문에, 제도 시행 이후 받는 모든 연금액에 세금을 부과하기보다는 신규 가입자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생명보험업계는 즉시연금 과세방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가입금액이 1억원일 경우 매달 받는 연금이 35만원 수준에 불과해, 즉시연금을 단순히 고액자산가들의 이자 불리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설명. 또한 보험회사들이 장기 예치가 가능한 즉시연금 수입보험료를 활용해 국내 기업들에게 대출·투자하는 등 경제를 활성화하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즉시연금에 납입한 보험료가 적은 가입자들은 다달이 받는 연금이 그리 많지 않다"며 "즉시연금 수입보험료로 보험회사가 기업에 대출을 해주거나, 사회에 투자도 하는 등 순기능도 많다"고 말했다.
